[이 아침의 시] 연애통화 / 강인한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9/06 [08:51]

[이 아침의 시] 연애통화 / 강인한

서대선 | 입력 : 2021/09/06 [08:51]

연애통화

 

가을이면

금빛 동전을 짤랑거리는 노란 은행나무

둥치를 사이에 두고 만나기

만나서 손잡기

사랑하는 이여.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아, 끝없이 끝없이 눈이 내려서

집도 세상도 폭삭

눈에 파묻히게 되면

삽으로 눈 속에 굴을 파기

너희 집에서 우리 집까지

굴을 뚫고 오가기.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죽으면 

무덤을 나란히 하고 누워

깜깜한 땅 속에서

드러누운 채로 팔을 뻗어

나무뿌리처럼 팔을 뻗어

서로 간질이기.

 

# 사랑도 유효기간(the term of validity)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사랑이란 두뇌의 ‘화학작용(chemical action)'으로 유효기간이 있다고 보았다. 사랑의 단계는 이끌림, 빠져듬, 애착의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관여하는 사랑의 화학 분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녀 사이 애정의 지속기간을 실험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남녀의 사랑은 2년을 전후로 해 대뇌에서 사랑의 화학물질에 대한 항체(antibody)가 생겨 사랑의 감정이 변하게 된다고 하였다.

 

“가을이면/금빛 동전을 짤랑거리는 노란 은행나무/둥치를 사이에 두고 만나기/만나서 손잡기” 단계는 사랑의 제2단계로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싶고, 끌어안고 싶은 신체적 접촉 충동이 일어나면서 뇌하수체에서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페어 본드(pair bond)'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감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으로 서로 간의 결속력을 높인다.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아, 끝없이 끝없이 눈이 내려서/집도 세상도 폭삭/눈에 파묻히게 되면/삽으로 눈 속에 굴을 파기/너희 집에서 우리 집까지/굴을 뚫고 오가”고 싶다면, 엔도르핀(Endorphin)과 세로토닌(Serotonin)이 분비되는 사랑의 제3단계의 시기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초기의 불같던 사랑은 사라져도 오랫동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을 지속시키며 보살펴주고자 한다.  

 

“우리가 죽으면/무덤을 나란히 하고 누워/깜깜한 땅 속에서/드러누운 채로 팔을 뻗어/나무뿌리처럼 팔을 뻗어/서로 간질이기”를 하고 싶다는 시인은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사후까지도 함께하고 싶은 “연애통신”의 세계는 사랑을 화학작용이 아니라 비익조(比翼鳥)의 사랑으로 볼 때 가능하다. 상상의 새인 비익조는 날개와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짝을 만나지 못하면 제대로 볼 수도, 날 수도 없는 존재이다. 누군가를 사후까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스스로 비익조의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비익조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리움, 사랑, 애틋함, 열정, 우정, 영혼, 영원...’과 같은 단어가 그들 세상에 생겨난다. 사후에도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나무뿌리처럼 팔을 뻗어” “서로 간질이며” 사랑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데이트폭력처럼 일그러진 사랑의 모습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에,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하는 비익조의 사랑은 천연기념물이라도 된 걸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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