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리뷰]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글 합창서사시

국립합창단, 진정한 K합창 서곡 울리다

김종섭 | 기사입력 2021/10/14 [08:24]

[콘서트 리뷰]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글 합창서사시

국립합창단, 진정한 K합창 서곡 울리다

김종섭 | 입력 : 2021/10/14 [08:24]

역사적 기실에 기초한 노랫말을 감동적으로 풀어내 
                                                                                     

전 세계에는 6천여 개의 음성 언어가 존재하지만, 문자언어는 겨우 138가지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문자는 50여 개뿐이다. 이 많은 문자언어 중 그 기원의 뿌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문자는 단 하나, 오직 한글 '훈민정음'이다. 

 

칸타타를 포함해 오페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전 예술 장르를 망라해 문자의 기원을 소재로 다룰 수 있는 작품도 한글밖에 없다. 

 

▲ K-Classic 제공


클래식음막에 칸타타곡들은 많다. 해마다 우리 무대에 자주 오르내리는 ‘칸타타’로는 칼 오프프의 ‘카르미나 브라나’, 헨델의 ‘메시아’,  커피칸타타 사냥칸타타 등 바흐 ‘칸타타’, 북스테후데의 '교회 칸타타' 등 바로크 시대 이후 줄곧 계승돼오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칸타타 중에서도 역시 문자 기원을 주제로 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윤의중 음악감독이 국립합창단의 지휘봉을 맡은 이후 우리말 칸타타 작품을 꾸준히 무대화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가장 위대한 우리말 칸타타의 결정 작품이 오래 기다려온 신화처럼 탄생, 청중들을 벅찬 감동의 물결로 이끌었다.

 

지난 10월 12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글날 기념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극본 탁계석 작곡 오병희 연출 각색 안지선)이 국립합창단 제186회 정기연주회(K합창클래식 시리즈 3)의 일환으로 윤의중의 지휘 아래 칸타타로서는 화려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국립합창단의 거대하고 도도한 음의 흐름을 타고, 세종대왕으로 출연한 바리톤 김진추와 소리꾼 이봉근이 독창자로 출연해 '용비어천가'와 '세종실록', '훈민정음 해례본' 등 세종당시의 역사적 기실에 기초한 노랫말을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훈민정음’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개벽을 알리는 천지의 두드림을 표현한 웅장한 대북 연주에 이어, 세상을 깨우고 새로운 왕조의 출범과 세종 선대의 6대조를 찬양하는 ‘육룡이 나라샤’, 백성들의 희노애락을 따뜻하게 표현한 ‘뿌리깊은 나무’, 그러나 고복격양 끝에 닥치는 환란과 기근 등 백성의 고통을 묘사한 ‘기근’과 ‘어린 백성’, 결국 인심이 형해화된 삶에 시름하는 세종의 ‘탄식’ 등으로 1부를 장식했다.

 

2부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에 기초해 세종이 10년간 한글 창제를 비밀리에 준비해온 과정을 담은 ‘비밀의 방’, 세종이 성군이 되기는 바라는 소헌왕후의 기원과 우리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세종대왕의 이중주가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해와 달’, 훈민정음의 소리글자 원리를 합창으로 표현한 ‘소리글자’, 훈민정음이 중국의 비위를 거스린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최만리의 반대와 세종의 격노를 다룬 ‘상소문’ 등으로 전개되었다.

 

3부는 마침내 창제 반대에도 불구하고 1446년 훈민정음을 공개하는 격동의 ‘반포’, 우리글의 첫 전파자 역할을 했던 ‘궁녀들의 노래’, 어리석은 이도 열흘이면 배우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스물여덟자로 표현 가능한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묘사한 ‘한글’, 후손들이 복된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세종의 독창 ‘위대한 유산’에 이어, 훈민정음으로 백성이 편안한 나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은 모두가 다짐하며 거대한 음악의 폭포로 마무리를 짓는 ‘백성의 노래’로 대단원을 맺었다.

 

 

훈민정음 칸타타로 표현한 아이디어에 높이 평가

 

피날레가 끝나자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관중은 환호했다. 언제 우리가 이런 칸타타를 맛볼 수 있었던가 하는 감탄으로 옹송거렸다. 훈민정음이 끝나고 탁계석 극본가는 그동안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마음의 기도를 울리며 숱한 밤의 불을 밝혔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겨운 감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훈민정음을 쓰기 위해 세종대왕의 마음으로 이입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글 모르는 백성들의 고통을 영혼으로 절절히 받아들인 후 쓰기 시작했죠. 오늘은 참으로 감동스런 순간이며 이 극을 작곡한 오병희 작곡가와 마침내 음의 구축물로 형상화시킨 윤의중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훈민정음을 칸타타로 표현한 아이디어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박신화 합창연합회 이사장은 특히 국악과 서양음악을 콜라보로 연결한 점은 시대 요청에 부응한 것이고, 음악의 흐름에도 부합한 시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윤의중 감독 이후, 한글 칸타타마다 공연장이 늘 매진되곤 하는데 이번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전통 소재로 영상과 국악,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장르를 함께 녹여넣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솔리스트 역시 뛰어난 분들이 출연해 훈민정음의 세계적 위상에 걸맞는 무대였습니다.”

 

세계 진출에 앞서 국내 방방곡곡 무대에 올라야 

 

박 교수는 한글은 미국과 유럽 등 아이비리그 대학은 물론 하버드대학에서도 그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을 만큼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문자언어라며 특히 일본대학에서는 무려 3백개의 대학에서 우리말을 가르칠 정도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시작단계이지만 머지많아 한글을 가르치는 국가마다 칸타타 '훈민정음'의 공연을 펼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작곡도 대단했습니다.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 팝, 국악 등 다양한 스타일을 융합했더군요. 오병희 작곡가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음악가입니다.”

 


홍성훈 오르간 제작 마이스터는 교회음악을 통틀어 훈민정음과 같은 우리말 칸타타는 처음 감상했다며 한글 창제 660년을 맞이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대단한 인류 유산이 탄생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한글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은 제법 존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조각조각 다룬 작품일 뿐 이렇게 한눈으로 훈민정음의 우수성과 그 역사성을 서사적 대하 스토리로 만든 작품은 없습니다. 우리말 칸타타라고 하지만 중창과 솔로 등 서양적 기법을 적절히 활용해서인지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버금갈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작품이 세계로 나가기 이전에 국내 극장마다 방방곡곡 상연돼야 합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르랴.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은 없는 것은 아니다. 1부에서의 곡의 흐름상 선율과 템포의 텐션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느른한 면이 없지 않았다. 홍 마이스터는 이를 조금더 박진감있게 표현한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피날레에서의 타악은 이런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퍼포먼스로 펼쳐졌다. 또 홍 마이스터는 컨타타 ‘훈민정음’은 우리 역사와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다리’와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훈민정음 공연을 통해 우리말의 소중함과 위대성을 새삼 깨닫게 되고 우리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유도하는데 긴요한 칸타타라는 것.

 

엄청난 스케일의 국가적 브랜드, 세계 진출에 대한 확고한 의지 

 

“이날치 밴드가 ‘범내려온다’는 곡을 내놓았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수궁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제 판소리 ‘수궁가’를 감상했습니다. 퓨전이 원래 작품으로 연결된 거죠. 이번 작품도 그런 브릿지 역할을 감당한다고 봅니다.”

 

김중현 중앙대 국악과교수는 민족적 소재로 전통 국악과 서양음악을 결합한 콜라보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칸타타는 규모가 거대한데다 음악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아 창작품으로서는 걸림돌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창작과정을 거쳐 우리말 칸타타의 미학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국가적 브랜드를 만든 것 같아 청중으로서도 벅찼습니다. 이는 윤의중 감독과 오병희 작곡가, 탁계석 극본가의 세계 진출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면 용두사미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국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  음악의 흐름과 주제 선율 훌륭해 

 

물론 우리말을 서양식 악법으로 표현하면 어색한 부분이 나올 수 있다. 레치타티보를 모두 오페라식으로 표현하다보니 우리말 표현에 다소 어색함이 있었다는 것. 차후로 국악적 요소인 '아니리' 비중을 높인다면 더욱 아름다운 칸타타가 될 것이라는 게 김중현 교수의 생각이다.“또 연주 내용을 봐서는 콘서트홀보다 오페라하우스나 국립극장 등 연출이 자유로운 공간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더 화려한 조명과 영상 등을 동원한다면 볼거리 풍성하고 훨씬 극적인 공연이 되겠죠. 내친 김에 '배합관현악' 구성도 권하고 싶습니다. 국악기와 양악기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다면 훨씬 스펙터클하고 웅장할 겁니다. 분명히 예견하건데 이 작품은 반드시 세계로 진출할 거예요.”

 

한편, 이병직 지휘자는 작품의 내용은 국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더구나 국악기와 우리 소리를 적극 사용한 것 역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내용과 음악의 흐름과 주제, 선율은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특히 음악을 연결하는 작곡의 테크닉은 이번 칸타타에서 가장 칭찬해야 할 부분입니다.”

 

학교 때 배운 훈민정음 돌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이상길 지휘자는 공연전부터 훈민정음을 어떻게 전개해나갈까 무척 궁금해했었다. 공연소감에 대해 우선 세종대왕 당시의 사회상과 접목해 스토리가 빈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사실 훈민정음의 창제동기 등은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외에는 다시 살펴볼 기회가 많지 않다. 이번 훈민정음 칸타타를 통해 우리말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는 것.  “대본도 중요하지만 이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풀어갈까가 관건이죠.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대본과 작곡 지휘 등 삼위일체로 빚은 역사적인 칸타타라고 봅니다. 더구나 조명 영상 자막 등이 더해서 훈민정음의 창제동기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90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단, 한번의 공연이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공연이 끝난 후 귀에 다소 선명하게 남는 멜로디 주제가 없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타악기와 소리꾼의 판소리 발성, 아니리 등의 빈도를 늘려 극의 긴장감과 환희를 강화한다면 훨씬 더 풍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K-Classic 제공

 

정부와 공공극장의 깊은 관심과 역할 필요 


한국인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해온 한글. 그래서 더 귀한 줄 모를 수 있다. 한글날은 그  고마움을 잊기 쉽기에 우리가 사는 동안 잊지말고 기념하자며 만든 국경일이다. 이제 기념을 강요하지 않아도 한글의 민족성과 위대성을 늘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민간도 좋지만 이런 작품은 국립과 지자체 공공극장이 먼저 나서야 할 일이다.

 

자, 그 첫걸음을 국립합창단이 시작했다. 우리말이 곧 민족이요 국민이지 않은가. 정부와 공공극장의 깊은 관심을 촉구한다.

 

김종섭 (월간 뮤직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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