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김후란 / 낮은 목소리로

서대선 | 기사입력 2022/12/19 [09:37]

[이 아침의 시] 김후란 / 낮은 목소리로

서대선 | 입력 : 2022/12/19 [09:37]

낮은 목소리로

 

이제 남은 한 시간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열기로 하자

 

잠든 아기의

잠을 깨우지 않는 손길로

부드럽게 정겹게

서로의 손을 잡기로 하자

 

헤어지는 연습

떠나가는 연습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흰 머리칼 하나 발견하듯

 

이해의 강을 유순히 따라가며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자

 

그리하면 들릴 것이다

 

깊어가는 겨울밤

세계의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풀꽃처럼 작은 목숨 나를 지켜보며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 ‘통했네요’. 점심으로 잔치국수가 어떠냐는 전화에 텔레파시가 통했다며 호박을 채 썬다. 눈이라도 올 것 같은 날, 따스한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준비하려 멸치 육수를 내리며 호박 나물을 만드는데, 마음이 통했나보다. 텔레파시(Telepathy), 또는 정신감응이란 우리에게 알려진 언어나 동작을 사용하지 않고도 한 사람의 생각, 말, 행동 따위가 다른 사람에게 전이(transmission)되는 심령현상을 의미한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우면 조금 떨어져 있어도 생각의 주파수가 일치할 때가 많다.

 

갈등이 격해지거나, 상대를 비난할 때 목소리가 거칠고 높아지거나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거리만큼 소리 지르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우화가 있다. 강둑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 스승이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소리를 질러야만 멀어진 상대에게 자신의 말이 가닿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화가 날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서로의 가슴은 더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큰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다.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면 마음속의 거리도 가까워져 조그맣게 속삭이거나, 아니면 텔레파시가 통해 서로 말이 없어도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리를 들을 때, 먼저 그 음파가 귀에 의해 신경 신호로 바뀌며, 뇌의 청각 피질로 넘어간 뒤 다시 뇌의 다양한 부분으로 전달된다. 이때 청각 피질 신경 신호의 파형은 실제 음파의 포락선(envelope)을 따라간다. 즉, 소리 크기의 변화를 따라간다. 영국 맨체스터 의대 정신건강 의학과 연구팀은 어린 영아도 감정이 실린 음성을 들었을 때, 뇌의 반응이 성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측두엽(側頭葉)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실험 결과 화내는 음성과 행복한 음성을 들었을 때, 측두엽의 서로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었고 한다. 아기도 어른의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전부터 이미 감정을 느끼며, 어릴 적부터 성난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면, 아기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는 뇌가 휴식을 취했을 때 작동하는 부위다. 인공적인 소리를 들으면 마음에 집중하는 반면,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는 외부세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에 집중하면 해결되지 못한 걱정거리를 계속 떠올려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는 교감신경 반응이 감소하고, 부교감신경 반응이 증가한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나고,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 해를 건너며 “낮은 목소리로/서로의 가슴을 열”고, “잠든 아기의/잠을 깨우지 않는 손길로/부드럽게 정겹게/서로의 손을” 잡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고요히 귀 기울여 보자. “깊어가는 겨울밤/세계의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풀꽃처럼 작은 목숨 나를 지켜보며/조용히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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