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히/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겸손의 향기》이해인 시인
지난밤 화초가 꽃을 활짝 피웠다.
늦가을까지 베란다에서 살던 화초들이, 어느 날 밤 들이닥친 갑작스런 추위에 입사귀를 떨군 모습이 가엾어 거실에 들여놓은 지 한 달여 만에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화초 하나가 밤새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워놓은 것이다. 또한 꽃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밤에만 향기를 뿜어낸다는 특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침나절 거실 전체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이 화초의 이름은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이다.
아래 찍어 올린 사진에서 보듯이 길게 피어난 모습이 마치 나팔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매우 아름답고 향기가 좋아서 천사의 나팔이라 불려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필자가 이 꽃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나팔을 닮은 특이한 모습이나, 샛노란 색깔의 아름다움, 그리고 거기서 발산하는 진한 향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거의 모든 꽃들이 하늘을 향해 얼굴을 쳐들고 있는 오만한 모습과는 달리, 고개를 숙인 겸손한 모습이 퍽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사님께서 오늘 나를 위해 어떤 곡을 연주해주실까? 아마도 ‘겸손의 노래‘일 것이다.
중국의 문필가 임어당(林語堂 'Lin Yut'ang')이 쓴 '생활의 발견' 이라는 책에는 《와상법(臥床法)》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와상법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발의 위치를 몸보다 높게 하고 상반신을 낮춘 채 생각에 잠겨보라고 작가 자신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런 자세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참으로 수월하게 풀려나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그 콧대 높고 교만한 생각이 발보다 아래에 있으니까 저절로 겸허해져서 생각이 부드러워지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발을 높이 해두니까 평소 아랫부분에 몰려있던 혈액이, 위치가 바뀌면서 순환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임어당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활의 발견이지만 참으로 물맛의 담백함을 느끼게 해주어 감명적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고질적인 것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 뵈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극도의 오만함과 그에 따른 이기심인 것이다.
사랑도 이젠 저 이타적(利他的)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찾아보기란 사막에서 샘을 찾기보다 어렵고, 쉽게 앞에 나서지 않는 겸손한 성품의 사람이면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해서 그의 인격을 무시해 버리는 오만불손과 무례를 자행하는 시대이다.
여자들은 나날이 수줍음을 잃어가고, 젊은이들은 예법을 소홀히 하며, 노인들의 시선이 자꾸만 흐려져 가는 이런 세태를 우리들은 가장 우려해야 한다.
국민소득이 높으면 무얼하나?
매일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무얼하나?
불신과 멸시, 소란과 무지와 무절제가 횡행하는 세상 속에서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 없으며 오만과 편견이 가득한 거리에는 신의 은총도 와 닿지 못한다. 결국 패배만이 있을 뿐이다.
구약성경 잠언 16장 18절에 기록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교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혹,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의 실상이 아닌가 하여마음이 서글퍼진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새로 맞은 2023 계묘년(癸卯年)은, 토끼의 착한 성품을 본받아 우리 모두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고 겸손을 실천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겸손한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향기가 피어오른다는 진리를 터득할 수 있기 바란다. 마치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꽃과 같이.....
이제 《로망스》를 띄워드리려고 한다. 베토벤의 로망스(Romance)에 질식되어있는 분들과 함께 생상스의 로망스를 듣고 싶다.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ens)‘는 모짜르트가 부럽지 않을 만큼 천재였던 프랑스의 작곡가이다.
로망스는 연인에 대한 성실한 인간의 멜로디지만 그것은 곧 이 세상, 또는 인생에 대해 외쳐 부르는 겸허한 자의 낮은 음성일 수도 있다.
로망스를 부르자. 로망스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자. 로망스를 연주하며 이 땅 위에 오만한 실패자가 생기지 않는 날을 꿈꾸어 보자. 가장 낮아진 자세로.....
카미유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c장조, Op.48》
강동석의 바이올린과 폴란드 지휘자 ’안토니 비트(Antoni Wit)‘가 지휘하는 폴랜드 국립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듣고자 한다.
베토벤의 2개의 로망스가 괴테(Goethe)적인 뜨거운 용광로의 열정으로 발산하는 서러움이라면, 생상스의 로망스는 결코 과도하게 뜨겁거나 서럽지 않은 차분한 감정의 절제, 그 자체라고나 할까?
새해 우리의 삶이 생상스가 추구하는 로망스의 세계로 인도되었으면 좋겠다.
강동석의 명연주가 우리의 생(生)을 보다 명상적이고 윤기가 흐르는 삶으로 승화시켜 주는 듯하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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