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인간의 타감작용

강인 | 기사입력 2023/01/25 [10:39]

[강인 칼럼] 인간의 타감작용

강인 | 입력 : 2023/01/25 [10:39]

생물학 용어 중에 '알레로파시(Allelopathy)’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고 한다. 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식물학자 ‘한스 몰리슈(Hans Molisch)’가 처음 주창한 용어다.

 

한스 몰리슈의 이론에 따르면 식물 생태계에는 어떤 한 식물이 내뿜는 화학적 물질이,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식물에 영향을 주어 그 식물의 생장(生長)에 장애를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감작용이다.

 

우리는 형형색색의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서 그 숲에 심겨진 각종 식물들의 조화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 속에서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뿜어내는 치열한 화학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화학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울창한 숲 풍경 [사진/인터넷에서 발췌]

 

예컨대 가을이면 붉은색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나무가 자기 주변에 다른 나무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안토시아닌'이라는 독(毒)을 분비하는 행위, 즉 단풍잎이 떨어지면 이 안토시아닌 성분이 땅속에 스며들어 다른 수종(樹種)의 생장을 방해하므로 이듬해 봄 어린 단풍 묘목들만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을 타감작용이라고 주장한 학자들은 뉴욕 콜게이트 대학의 '프랭크 프레이' 연구팀이다. 

 

단풍나무 외에도 소나무 뿌리는 '갈로타닌'을 내뿜어 다른 식물이 근처에서 자라지 못하게 한다. 또한 푸른곰팡이는 '페니실린'을 내뿜어 다른 세균들을 죽이고, 마늘의 '알리신'이나 고추의 '캡사이신', 허브의 '향기' 그리고 담배 잎, 토마토 잎, 가지 잎, 감자 잎 등에 들어있는 '니코틴'과 제충국(除蟲菊)의 '피레쓰린' 등도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발아, 성장, 번식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타감 물질이다.

 

이렇듯 마냥 착하기만 할 것 같은 나무와 풀도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참으로 이 세상의 생존계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생물들로 가득 차 있다. 비록 움직임이 없는 식물이지만 처절하기까지 한 생존경쟁의 모습에서 생명체의 신비함과 함께 연민(憐憫)의 정을 느끼게 된다.

 

동물인 인간들도 그 생존계에 속한 생명체의 일부라고 본다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투쟁과 살육 역시 어쩌면 자연법칙 상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인간들에겐 그 투쟁과 살육을 불가피한 경우에만 가려서 행하므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호칭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요즘은 그런 최소한의 본질마저도 잊고 사는 인간들을 종종 본다.

 

다른 사람이 받는 핍박과 굴욕 위에 군림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짓밟으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구가(謳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출세를 위해 오랜 우정을 배신하는 것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정의나 진리, 역사의식 등의 궤변(詭辯)을 운운하며 인륜까지 저버리는 다툼을 벌인다.

 

더욱이 이러한 사람들을 계도(啓導)해야 할 정신적 지도자 영역에 속해있는 학자나 예술가, 심지어 필자가 경험한바 종교인들 중에도 만연해 있음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특히 정치권은 그러한 비인간적 다툼이 가장 치열한 분야이다. 

 

정치권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국회의원 총선을 치룬다. 이 총선을 앞둔 시기에는 늘 국회 안에 당쟁(黨爭)이 거세게 벌어지곤 한다. 내년 4월로 다가온 제22대 총선도 과거와 다르지 않으리라 예측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 야 간에 다수 의석 확보를 위한 투쟁도 그렇지만 그에 앞서 같은 당내(黨內)의 공천 투쟁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한편, 요즘 집권 여당인 ‘국민의 힘‘은 오는 3월 8일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예비후보들의 다툼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그 모습이 선의(善意)의 경쟁보다는 친윤이니 비윤이니, 진성보수니 아니니 등 본질에서 비껴간 갈등으로 인해 사분오열(四分五裂)의 양상을 보이며 당심(黨心)을 흔들고 있다. 이 역시 당내 총선공천권 장악 시도(試圖)와 무관치 않으리라.....

 

이러한 모습은 마치 과거 조선시대의 사림(士林)들이 붕당(朋黨)을 이루어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다투던 '당파싸움'을 보는 듯하다. 결국 조선은 이 당파싸움으로 인해 망하고 말았다.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렇듯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아예 노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인들 간의 모습이 마치 당파싸움의 일면으로 비쳐져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필자는 이러한 모습을 접하며 [인간의 타감작용]을 생각해 보았다.

 

식물이나 인간의 타감작용은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해치는 행위이다. 그러나 '식물의 타감작용'은 같은 수종과는 서로 도우며 보호하지만 '인간의 타감작용'은 자신의 출세와 영달(榮達)을 위해서는 같은 수종까지도 가차 없이 죽여 제물로 삼는 모습을 볼 때 놀라움을 넘어 섬득함 마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이 자연현상 속에서 가장 악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어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치도 필요하고 출세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온 귀중한 인간관계가 일순간에 짓밟혀 버리고 마는 세태(世態)라면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정치의 문외한이다. 그러나 이러한 패륜에 의한 희망 실종의 현실이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평소 뜻을 같이하는 공동운명체로 지내오다가 총선을 앞두고 각기 '친(親)', '비(非)'로 떼를 지어 서로 해치고 죽이려는 패륜아들. 이들이 행하는 [인간의 타감작용]속에 누가 뿜어내는 독이 더 센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   라벨라 오페라단의 베리즈모 오페라 갈라콘서트 포스터 [사진/인터넷에서 발췌]

 

[인간의 타감작용]을 이야기 하다보니 '베리즈모(Verismo)’ 오페라가 생각난다. 이 ‘베리즈모’라는 용어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사실주의 오페라’ 운동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현실의 비참한 내용을 그려낸 ‘마스카니(Mascagni)’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레온 카발로(Leoncavallo)’의 '팔리아치(Pagliacci)' 등이 생각나는데 이러한 끔찍하고 비극적인 오페라들이 한 시절 이탈리아 오페라좌에서 흥행에 성공하던 때가 있었다. 그 외에도 ‘벨리니(Bellini)의 '몽유병의 여인(La sonnambula)'과 ’도니젯티(Donizetti)‘의 '람머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그리고 ‘볼프 페라리(Wolf Ferrari)’의 '성모의 보석(The Jewels of the Madonna)'도 그런 오페라에 속한다.

 

특히 오페라 '성모의 보석'은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복수가 피바람을 몰고 오는 베리즈모의 전형을 이루는 내용의 오페라인데 그중에서 이제 들으실 <간주곡(Intermezzo)>은 간이 녹아들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다. 마치 피를 마시고 태어난 장미의 붉은 꽃잎같이.....

 

‘볼프 페라리'의 오페라 ’성모의 보석‘ 중 <간주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Wolf Ferrari, 'Intermezzo from The Jewels of the Madonna'

 

이미 작고하신 분이지만 우리나라의 모 유명 작곡가는 자신이 중학생 시절 이 곡을 처음 듣고는 "아! 세상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음악이 다 있을까?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다 모아도 이렇게 아름답지는 못할터인데....."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음악 뒤에 일어나는 [인간의 타감작욤]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기고 ,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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