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재인 정부는 조국(曺國) 비리의혹, 추미애 아들 탈영의혹, 부정선거 의혹 그리고 서해 민간인 피살 사건 의혹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실책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부동산 정책일 것이다. 이 부동산 문제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 관한 사안으로, 이 정책의 실패는 정부가 전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로 인해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 전원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도 이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 것이다.
아무튼 필자와 같은 일개 필부(匹夫)는 지금도 그 시절 청와대에 계시던 하늘처럼 높은 분들에 대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장부(?)의 기상(氣像)을 느낀다.
이는 정치나 경제, 문화, 외교, 안보 등 사회 각 분야의 거대 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당시 청와대의 남자들은 어찌 그 많은 재물을 아내에게 모두 맡긴 채 그다지도 초연(超然)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국(曺國)’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법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사모펀드(私募Fund) 투자(투자 약정금 약 74억 원, 기 납입금 약 10억 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우리 가정의 재산관리는 아내가 전담하기 때문에 나는 몰랐다”고 답변했고,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동 상가건물 매입(매입가 약 25억여 원, 은행대출금 약 10억여 원) 논란이 일자 “가계약한 날 나는 국외 출장 중이어서 몰랐다. 아내가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하여 행한 일이다”라고 답변했으며,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비서관급 전원에 대한 다주택 매각 권고에 따라 소유하고 있던 두 채의 아파트 중 한 채를 현재의 시세보다 2억 원 이상 비싼 가격인 22억 원에 매물로 내놓은 것에 대해 “팔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라는 세간(世間)의 지적이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가격은 본인이 얼마라고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들은 부동산 거래를 잘 모른다“라고 답변했다.
이들은 마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을 남긴 고려 말기의 최영 장군처럼 일체의 물욕(物慾)을 버리고 단지 애국 애족의 충정(忠情)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위인(偉人)들로 보인다. 세 분 모두가 선 굵은 경상도 사나이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필자는 오랜 기간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활동하던 중 몇 년 전 한국에 돌아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사단법인 단체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은퇴 후 남은 세월을 통해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젊은 시절, 같은 일을 하며 겪었던 아픈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아직까지 문화예술에 대해 성숙되지 못한 사회 인식에 따른 열악한 환경을 우려하는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고 수년간 혼자 와서 생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현재 무보수로 봉직하는 형편이다 보니 생활이 그리 여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미국에 있는 아내가 한국을 방문했다.
필자는 아내가 도착하자마자 내가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은행 카드 중 하나(Check Card)를 건네주며 마음껏 사용하라고 했다.
말로는 마음껏 사용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카드에 들어있는 액수는 기껏해야 20만 원을 상회할 정도의 적은 액수였다. 그나마도 내가 넉넉해서 준 것도 아니고, 아내 역시 용돈이 없어서 받은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그 카드를 흔쾌히 받은 것은 남편인 내가 체면상 호기(豪氣)를 부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나는 사흘이 멀다하고 은행에 들려 출금을 확인하곤 했다.
혹시 아내가 잔고를 초과하는 지출로 인해 사용이 중지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중교통 요금 외에는 일체 사용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는 물론 나 혼자만이 아는 일이지만 이 얼마나 남자로서 쪼잔한 모습인가?
필자는 앞서 소개한 세 분의 위인(?)이 생각날 때마다 그들의 대범한 인품을 본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한편 한가지 빈정상하는 느낌이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산관리를 아내에게 전담시키는 대범한 그들에 비해, 오랜만에 만난 아내에게 기껏 20여만 원이 든 카드를 내주고는 부도(?)가 걱정스러워 수시로 잔고나 확인하고 있는 나의 초라함에서 오는, 같은 남자로서의 자괴감(自愧感) 때문이리라..... 생각할수록 마치 길거리에서 ‘똥 밟은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자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한마디 쏘아붙였다.
“야, 이놈들아! 부동산 거래도 잘 모르는 너희들이 청와대 수석으로 있으니 부동산 정책 실패가 당연하지 않겠냐? 그리고 그 큰돈 아내에게 맡겨 기껏 펀드(Fund)나 아파트 투기로 축재하는 너희들이 고위 공직자로 있으니 나라 경제가 이 꼴 아니냐? 이 나쁜 놈들아!“
이것이 나 같은 쪼잔한 남자가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기껏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였다. 이렇듯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경제분야 조차 모른채 청와대를 점령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라면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문화예술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문외한일 텐데..... 이런 자들이 어찌 국민의 정서를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이 똥통에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소망에 가족까지 떠나 귀국한 이 쪼잔한 사나이를 돌아보니 세상을 바보처럼 살아온 것 같아 실속 없이 마음이 더욱 공허하기만 하다.
문득 젊은 시절 의미도 모르고 흥얼거리던 노래가 떠오른다.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가수 김도향이 1977년 어느 가을날 창밖에 낙엽 한 잎이 그림처럼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삶이 그 낙엽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작사 작곡했다는 유명 가요다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우~ 우~ 우~“
이 노래를 들으며 혼자 허공을 향해 또 한 마디 쏘아붙여 본다.
”야, 이놈들아! 내가 돈이 없지 ‘가오‘도 없는줄 아냐?“
이렇듯 비록 독백(獨白)으로라도 큰소리칠 수 있는 까닭은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재물로 말하자면 부모에게 단 한 푼 물려받은 것 없고, 배경으로 말하자면 하다못해 면서기(面書記) 빽 하나도 없이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외길을 걸어오고 있음은 물론, 평생을 나름 깨끗이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알량한 자부심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난 절대로 인생을 바보처럼 살아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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