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삼동을 참아온” 개나리 “혈관 속”으로 “봄”이 “시내처럼 흐르”는 지, 열 두어 살 여자애 젖 망울처럼 도톰하게 부푼 개나리 꽃봉오리가 따스한 햇볕 아래 젖몸살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나리 꽃망울을 쓰다듬으니, “삼동”을 무탈하게 건너온 내 “혈관 속”으로 개나리가 전해주는 “봄”이 “시냇물”처럼 흘러든다. 마음이 “종달새”처럼 즐거워지며, 내 가슴도 간질간질 “아른아른”하다.
식물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알까? 식물도 동물처럼 주기적 리듬을 감지하는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 식물이 특정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은 온도와 광주기(光週期)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플로리겐(florigen)’이라는 호르몬으로 온도와 광주기를 인지하여 꽃피울 시기를 정한다. 식물 호르몬인 ‘플로리겐’은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는 생물시계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지, 짧아지는지, 온도가 낮아지는지, 올라가는지를 플로리겐 생체시계로 인지한다. 꽃눈이 개화하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한데, 봄에 피는 꽃들의 필요조건은 겨울의 낮은 온도다.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요인 중 하나는 겨울 저온이다. 많은 식물이 혹독한 겨울 저온을 거쳐야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겨울 종의 밀과 보리다. 1920년대 러시아 과학자들은 겨울 저온에 의한 개화 유도 현상을 ‘춘화처리(vernalization, 작물의 개화를 촉진하거나, 씨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생육 기간 중 일정 시기에 저온처리를 하는 것)’ 라고 명명하고 춘화처리가 필요 없는 여름 종 밀과 비교했을 때, 겨울 저온이라는 온도를 감지하는 능력이 식물에 있음을 알아냈다.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 대개 FLC(Flowering Locus C)라는 유전자가 일정량 발현을 지속하면서 해당 식물이 저온처리를 받기 전까지 개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식물이 계절을 인식하는 또 다른 중요한 환경요인으로 빛을 들 수 있다. 특히 낮의 길이, 즉 광주기(光週期)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면서 낮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가을에서 겨울로 가면서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진다. 식물은 이런 규칙적 환경변화를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 신호로 이용한다. 광주기를 인지하는 기능은 ‘빛’과 ‘주기’라는 두 가지 물리적 인자가 결합 된 복합적 환경요인이다. 식물이 빛을 인식하는 광수용체는 ‘피토크롬(phytochrome)’이라 불리는 식물만이 가진 광수용체다. 즉, 빛을 인지하는 피토크롬의 작용과 ‘주기‘를 인지하는 생물학적 시계의 조합이 광주기를 감지하게 되고, 광주기에 따라 개화 시기가 결정된다.
후손을 위한 봄꽃들의 지혜로운 전략은 빛난다. 봄에 피는 꽃들은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꽃가루받이가 가능한 생존전략을 사용한다. 사실, 이른 봄에 피는 풍년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은 지난해 늦가을 미리 꽃봉오리를 마련해 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낸 후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들고, 꽃향기를 만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는 봄꽃은 여름꽃처럼 진한 색깔도, 많은 꿀도, 강한 향기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겨우내 허기졌던 꿀벌들에겐 맛있는 성찬이다. 배고픈 벌들이 더 멀리 날아다니며 꿀과 꽃가루를 모으도록 함으로써, 꽃들은 멀리 있는 우수한 유전자와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봄에 피는 꽃에서 배운다면, 지난가을부터 미리 꽃봉오리를 만들어 두는 준비성이다. 그리고 혹독한 “삼동(三冬)”의 추위를 묵묵히 견디는 인내심이다. 봄꽃들이 “삼동”을 건넌 꿀벌들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더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려는 생존전략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삼동을 참아온” 우리도, 우리의 “봄”을 꽃 피울 수 있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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