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동해안 / 기혁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3/13 [08:40]

[이 아침의 시] 동해안 / 기혁

서대선 | 입력 : 2023/03/13 [08:40]

동해안

 

노숙을 하던 파도가

발자국을 씻어준다

씻은 것들을 곱게 펴서

때 묻은 맨발에 신겨준다

 

들것이 도착한 다음에도 하얗게

하반신을 뽐내는 투신

출생지 맞춤과는 달랐지만

앞코의 물광은 여전했다

 

햇살이 구경꾼을 비집고 한 번씩

새 신을 샀다고 한 번씩

밟아보잔다 

 

# “동해안” 소돌 해변으로 들어서자, 3억 7천 5백만 년 전의 바다가 달려와 발 앞에서 출렁였다. ‘내 안의 물고기’가 나보다 먼저 바닷속으로 뛰어들더니 힘차게 수평선 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원시의 태양이 파도 끝에서 반짝이며, ‘오래된 미래’ 같은 웃음을 건넨다. 탁 트인 바다 저 앞쪽에 일 획을 그은 수평선이 뭉게구름으로 수신호를 보낸다. 발자국을 “씻어준” 파도가 “씻은 것들을 곱게 펴서/때 묻은 맨발에 신겨준다” 깨끗해진 정신이 바다처럼 깊고, 하늘처럼 넓게 확장된다. 

 

‘인간은 업그레이드된 물고기다.’라는 닐 슈빈(Neil Shubin)의 전언에 의하면, 인간 신체의 기원을 물고기에서 왔다고 보았다.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비슷한 손, 오래전 멸종한 무악(無顎)어류의 조직화 된 머리처럼, 현생 인간의 몸속에는 물고기의 일부가 남아있다. 닐 슈빈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인체에서 진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나는 화석의 발견과 고생물학으로 인간의 선조가 물에서 뭍으로 올라와 사지(四肢) 동물이 되고, 이후 진화를 거쳐 현생 인간의 몸 구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화석으로 ‘틱타알릭(Tiktaalik)’이란 물고기에서 유추해 들어갔다.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은 물속에서 생활했던 생물들이 뭍으로 나오게 되는 진화를 설명하는 연결고리에 해당 되는 물고기 화석이다, ‘틱타알릭’은 지느러미와 비늘을 가진 엄연한 물고기지만 지느러미는 발처럼 생겨 몸을 지탱할 수 있었고, 육지에서도 걸을 수 있었다. 

 

생물들의 팔다리는 모두 공통의 패턴을 따른다. 팔다리가 날개든, 물갈퀴든, 손이든 같은 구조를 따른다. 팔의 상완골(humerus)이나 허벅지의 대퇴골(femur)처럼 먼저 한 개의 뼈가 있고, 거기에 두 개의 뼈가 관절로 연결되며, 거기에 또 작고 둥근 뼈들이 여러 개 붙어 있고, 마지막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 연결된다. 모든 팔다리의 구조에는 이런 패턴이 깔려있다. 손목을 안팎으로 구부리거나 주먹을 쥘 때 사용되는 관절은 ‘틱타알릭’이 나타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위팔뼈와 팔뚝 뼈, 손목과 손바닥을 처음으로 지녔던 생명체는 비늘과 물갈퀴도 함께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엄연한 물고기’였던 것이다. 즉 ‘틱타알릭’은 종과 종의 경계에 있었던 생명체였으며, 우리 인간의 먼 조상이다. 물이 그리운 이유다.

 

봄이 되어 나무에 물오르니, ‘내 안의 물고기’도 입을 뻐끔거리며 먼바다를 향해 몸을 뒤틀었다. 둔덕을 걷고, 봄꽃들을 만날수록 잠자리에 누우면 ‘그랑 불루(Le Grand Bleu)의 바다’가 방안으로 밀물졌다. “동해안”으로 달려가 바다를 바라보며, 3억 7천 5백만 년 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었던 ‘내 안의 물고기’가 마음껏 헤엄치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자세로 살고자 했던 선인들처럼, 산을 보고는 의리와 중후함을 배우고 물에서는 지혜롭게 물처럼 막힘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삶을 실천하라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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