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인 나를 밟아다오
흙인 나를 밟아다오 아지랑이는 언덕을 싸고도는데, 종다리 한 마리 솟아올라 푸르름 속으로 사라진다. 흙인 나를 밟아다오, 사과나무인 그대 뿌리를 내려다오, 깊이깊이 내려다오 내 가슴에 내려다오, 아지랑이는 언덕에서 피어오르는데 종다리 한 마리 날아올라 푸르름 속에 섞인다 흙인 나를 밟아다오.
# ‘꼭꼭 밟아주세요’ 퇴비와 물뿌리개를 들고 마당 주변 나무와 둔덕의 나무들을 살폈다. 겨우내 얼었던 흙들이 녹으면서 나무들도 흔들렸을 것이다. 땅도 움직이기에 균열이 간 흙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면 뿌리가 말라 죽을 수 있고, 들쥐나 두더지가 지나다니며 뿌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둔덕에 심은 어린 살구나무 아래 흙이 조금 위로 솟아 있고, 흙도 버짐 핀 얼굴처럼 꺼칠했다. 살구나무 주변을 둥글게 파고 영양제 먹이듯 퇴비를 얹어주고, 흠씬 물을 뿌려주고 다시 흙을 덮어주었다. 살구나무 주변 흙을 고루 다지고, 들쥐나 두더지가 지나다니며 뿌리에 상처를 낼 수 없도록 꼭꼭 “밟아주었다”.
지구의 피부 역할을 하는 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흙이란 암석이나 동식물의 유해가 오랜기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생성된 땅을 구성하는 물질이다. 흙 1cm가 생성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0년 정도 걸린다. 흙은 텅빈 공간이 아니다. 비옥한 흙 한 줌 속에는 지구 전체에 사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인간은 흙 속 생명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운명 공동체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지구는 표면의 흙을 5억 톤이나 잃어버렸다고 한다. 공간 효율성과 경제 가치를 앞세워 지표면의 흙을 걷어내고 땅속까지 개발의 욕망이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6만 2천 제곱킬로미터의 토지가 심하게 황폐해졌거나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만 년 전 인류가 최초로 밀과 보리를 파종한 뒤 지금까지 경작지 약 50억 에이커(1 에이커는 1,224평)에서 소중한 표토층이 깎이고 유실되었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흙에 나무를 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강하게 관리되고, 사랑으로 숙성된 비옥한 정신의 흙이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타인의 마음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시인은 “사과나무인 그대”를 자신의 마음속에 심었다. 그리곤 “뿌리를” “깊이깊이 내려” 달라고 부탁한다. 사과나무는 햇빛을 좋아하지만, 잎과 열매는 직사광선보다는 부드러운 빛을 좋아한다. 사과나무 묘목을 땅에 심기 전, 먼저 흙을 뒤집어 공기와 햇볕을 섞어주고, 돌맹이를 걸러낸 다음 퇴비와 사과나무 성장에 필요한 유기농비료를 잘 혼합해 둔다. 사과나무 뿌리는 심기 하루 전, 소독액 속에 약 30분간 담가 세균을 없애고, 긴 뿌리는 조금 자른다. 나무를 심는 흙의 깊이와 직경은 50센티 정도가 적당하다. 흙 속에 뿌리를 잘 펴서 심고, 부드러운 흙을 덮어주며 나무뿌리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골고루 흙을 가득 채워 준 다음 물을 흠씬 뿌려주고, 다시 흙을 덮고 나서 꼭꼭 “밟아”주어야 한다.
사과나무는 모든 벌레들이 좋아한다. 그러기에 부지런하게 사과나무를 보살피지 않는다면, 꽃도 열매도 제대로 얻을 수 없으리라.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사랑의 나무를 가슴에 심는다는 것, 그리고 “깊이깊이”“뿌리를” 내린 그대라는 나무와 함께 “푸르름 속에 섞이는” “종다리 한 마리를” 바라보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싶다면, 사랑의 뿌리를 품은 자신의 마음이 바람에 들떠 뿌리를 말라 죽게 하지는 않았는지, 심기만 하고 돌보지 않는 마음의 흙 위로 폭우가 쏟아져 흙이 유실되고, 온갖 세균과 벌레들이 들끓어 사랑의 뿌리를 갉아 먹게 하지는 않았는지, 들쥐나 두더지가 마구 헤집고 다니게 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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