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거품들·2 / 정영선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4/10 [07:01]

[이 아침의 시] 거품들·2 / 정영선

서대선 | 입력 : 2023/04/10 [07:01]

 

거품들 · 2

 

벚나무 거품들은 아름답다

삽시간에 번지는 꽃 거품들

굳은 몸을 펴는 나무

비바람에 처음 한두 잎, 우수수 우르르 떠나

보내다

꽃잎들 점점이 길 가장자리에 몰린다

단명함은 시간의 거품

아름다움이 정신의 때를 씻긴다

 

# ‘거품을 많이 내는 어르신께 제일 큰 막대사탕을 드립니다’. 빵집에서 파는 커다란 막대사탕은 아기 손바닥만 했다. 재활 치료를 받는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플라스틱 빨대로 종이컵 속 비눗물을 불고 있었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플라스틱 빨대를 불어야 비누 거품이 많이 올라온다. ‘포도송이 만들기’ 놀이는 한 손으로 종이컵을 잡고, 다른 손으로 잡은 빨대를 종이컵 속에 넣고,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로 부드럽게 컵 속의 비눗물을 빨대로 불어 비누 거품을 내는 놀이 훈련으로 손과 눈과 입술의 협응(coordination) 능력을 향상시킨다. 빨대로 종이컵 안의 비눗물을 불면서 거품을 많이 내는 훈련은 입술 근육훈련과 호흡훈련을 겸하는 재활 치료 중 하나다. 경쟁심을 유발하는 막대사탕은 무지개 색깔 회오리 무늬가 화려하고, 크기도 큼직해서 훈련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인기가 있다. 막대 사탕을 빨아 먹으면, 혀의 운동과 촉각, 미각훈련도 겸할 수 있다. 

 

컵 위로 비누 거품 포도송이를 많이 올린 할머니는 커다란 막대 사탕을 상으로 받고 아기처럼 기뻐하신다. 훈련 참가상으로 롤리팝을 받은 어르신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훈련이 끝나고, 비누 거품이 가라앉아 축축해진 종이컵을 본다. “단명함은 시간의 거품”, 시간이란 유한한 것들에만 존재하는 “거품”이다. 재활 치료로 조금 “굽은 몸을 펴는” 어르신들 위로 “점점이 길 가장자리에 몰”리는 꽃잎들 같은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인간은 물거품(homo bulla)’이라고 했던 에라스뮈스(Erasmus, 1466-1536)는 ‘인생살이보다 덧없는 것도 없고, 그보다 공허한 것도 없다‘ 라고 하였다. 인간의 삶이란 ‘헛되고 헛되다 (Vanitas Vanitatum)’는 교훈을 그림으로 그렸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니타스 정물화’ 속에 꽃과 유리그릇, 비눗방울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꽃은 곧 시들고, 사랑도 유리처럼 금이 가기 쉽고, 욕망을 채찍질하며 앞만 보고 달렸던 인간도 죽음 앞에서는 비눗방울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임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봄날, “삽시간에 번지는 꽃 거품들”이 “비바람에 처음 한두 잎, 우수수 우르르 떠나/보내‘는 걸 보며, 우리의 삶도 꽃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도 “거품들은 아름답다”. “단명함은 시간의 거품/아름다움이 정신의 때를 씻긴다”고 시인은 전언한다. 유한한 생명에 대한 각성이 오히려 “정신의 때를 씻긴다”라는 메시지 속에, 인간은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를 갖은 존재로서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비록 한 인간의 삶은 “거품”처럼 단명할지라도, ‘인간의 세대란 나뭇잎과도 같아, 바람에 한 세대의 잎이 지더라도, 봄이 오면 새로운 세대가 나무에 움트듯이’ 이어져 나갈 수 있다고 하였던 시인 호메로스(Homer, B.C.800-750)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봄날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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