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봄밤 / 이면우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4/24 [09:19]

[이 아침의 시] 봄밤 / 이면우

서대선 | 입력 : 2023/04/24 [09:19]

 

봄밤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 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 ‘엄마 기억이 가득 들어 있잖아요’. 늦은 “봄밤”, 그릇장 깊숙한 곳에서 거즈 손수건에 싸놓았던 그릇을 꺼낸다. 무슨 보물이라도 넣어놓았느냐는 표정에 거즈 손수건을 풀고, 주먹크기 만한 유아 시절 밥주발을 식탁에 놓는다. 조그만 밥주발을 들여다보니, 따끈한 밥을 얹은 조그만 숟가락을 내밀며, 입을 ‘아’ 벌리고 따라 하라던 엄마 얼굴이 가득했다. 

 

엄마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진 엄마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새 생명을 잉태했던 처음 두세 달은 입덧으로 심한 멀미 증상과 특정 음식에 대한 이상 식욕과 몸의 변화를 견디어야 했다. 육 개월을 전후로 뱃속에서 움직이는 새 생명의 태동을 느꼈을 때의 놀람과 팔 개월이 지나자 발차기가 씩씩했던 아기의 발바닥 모습이 불룩했던 배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만삭을 전후로 몸무게가 20kg 늘면서 아기가 차지했던 면적과 부피만큼 몸 안의 장기가 눌려 소화불량과 배설 장애에 시달렸다. 12시간의 진통을 견디며,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듣고 비로소 기진했다. 약 270일 동안 함께 숨 쉬고, 함께 먹고, 함께 움직이고, 함께 잠들었던 새로운 생명인 아기 발목에는 ‘엄마가 된’ 내 이름이 적힌 인식표가 달려있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온 아기와 첫 대면 했다. 젖을 빠는 아기의 힘이 얼마나 세었는지, 젖꼭지 둘레가 갈라져 쓰리고 아팠다. 올리브유를 바르고, 얼음 찜질을 하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목이 메었다.  

 

아기가 처음 느끼는 세상은 시각도 청각도 아닌 촉각과 미각이다. 엄마의 젖은 아기에게 세상이며, 타자이다. 엄마는 아기가 세상을 만나는 준거 참조(criterion-reference) 역할을 한다. 엄마의 부드럽고 따스한 젖을 먹고 자랐다면, 아기가 느꼈던 세상은 부드럽고 달콤했을 것이다. S. Freud(1856-1939)는 이 시기에 형성되는 성격을 구강 흡수적(oral absorb) 성격이라고 하였으며, 나중에 사회적 관계에서 긍정적이고 따스한 마음을 유지할 것이며, 엄마와의 긍정적 애착(attachment)은 아기에게 안정감을 형성시키게 되어 타인들과 인간관계 형성에도 일반화된다. 이가 날 무렵 아기는 엄마의 젖을 깨물기도 하는데, 구강 공격적(oral aggressive)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로, 어머니가 ‘안돼’라고 금지했다면, 아기는 세상을 함부로 깨물거나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고 보았다. 이유식을 하게 되고, 일어서고,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아기의 사회적 관계는 아버지와 친척들과 이웃과 친구로 확장된다.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 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말해주자/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엄마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에겐 세상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특히 아들은 엄마는 갖지 못한 아니무스(Animus)를 보완해주는 존재이다. 엄마를 소중하게 여기는 시인의 아들에게선 ‘엄마의 아니무스로서 영원한 연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들의 사랑에 “얼굴에 붉은 꽃, 소리 없이 지나가는” 아들의 연인. 시인의 아들과 엄마의 사랑이 꽃피는 “봄밤”, 나도 그릇장 깊숙이 모셔두었던 조그만 밥주발을 꺼내 엄마의 기억과 “봄밤”을 건너야겠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