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모래알 / 오세영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5/08 [06:01]

[이 아침의 시] 모래알 / 오세영

서대선 | 입력 : 2023/05/08 [06:01]

 

모래알

 

서로 모여

서 모래가 

된다 하지만

모래알은 끝내 홀로다.

그러나 흙을 보아라,

그는 스스로 자신을 버려 삭을 줄을

아는 까닭에

나, 남의 구분이 없다

촉촉이 젖은 그의 가슴이 꽃을 피운다

한 방울의 물조차 흡수를 거부하는

모래여,

깨지는 것은 홀로 되지만

삭는 것은 항상

전체가 된다. 

 

# ‘어린 것들을 부탁해’ 텃밭 가득 어린 모종들을 심었다. 매운 고추, 맵지 않은 고추, 오이고추, 찰토마토, 가지, 호박, 상추, 쑥갓 모종들이 이랑마다 줄 맞추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입학식 날 운동장에 처음 줄을 선 신입생 모습이다. 어린 생명을 품은 흙 앞에선 저절로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포즈로 마음도 고개도 절로 숙이게 된다. 흙은 제가 키워내야 할 생명의 본성을 억압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키워 낼 것이다. 매운 고추는 맵게, 맵지 않은 고추는 순하게, 오이고추는 사근사근하고 아삭한 식감을 살려줄 것이다. 토마토는 붉고 달콤하게, 가지는 신비한 보랏빛 색을 입혀줄 것이고, 애호박의 윤기 나는 연초록도, 다폴 거리는 상추의 이파리 질감도, 쑥갓의 독특한 향기도 모두 제가 지닌 품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키워낼 것이다.  

    

텃밭은 ‘전통, 명예, 규율, 최고’와 같은 목표로 어린 생명을 억압하거나, 목표달성을 위해 다그치지 않는다. 텃밭은 성장하는 생명이 자신의 감각기능과 기관들을 스스로 최대한 선용(善用) 하도록 조력자 역할만 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모종들은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 같은 고춧대에서 열린 고추도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꼬부라지기도 한다. 자연은 인간처럼 목표를 세우고 그 기준에 도달하려 재촉하지 않는다. 흙은 텃밭에서 자라는 생명이 “모래”처럼 혼자서는 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물과 태양과 바람과 흙과 흙 속에서 사는 수억 개의 미생물들과 지렁이, 나비, 벌, 새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서로 상호작용할 때, 자신의 본성을 일깨우고, 세상에 제 모습으로 당당히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배우도록 한다.

 

건강한 흙은 약 60% 정도의 담수를 품고 있기에 “촉촉이 젖어”있어서 “한 방울의 물조차 흡수를 거부하는/모래”와는 달리 다양한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흙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것들끼리 어우러지도록 “스스로 자신을 버려 삭을 줄을/아는” 행동을 할 것이다. 서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래알”들은 자기들끼리는 제대로 뭉치지도 못하고 “끝내 홀로다”. 그러나 흙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상생하는 법을 보여줄 수 있다. “홀로”인 모래 알갱이들에 시멘트 가루를 함께 섞고, 물로 버무려주면 망치로 두드려도 잘 깨지지 않는 견고한 덩어리가 된다.

 

이 덩어리로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들어 고층 건물을 올릴 수 있다. 그뿐이랴, 모래가 불과 융합하면 유리가 되고 세라믹이 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마트폰의 액정, 안경, 손목시계, 유리 창문, 전등, 유리잔, 유리 식기, 세면대 등, 우리의 일상생활 곁에는 다른 물질과 협동하고, 서로 융합한 모래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흙의 마음으로 서로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모래알” 같은 마음들을 함께 섞고, 협동하고, 융합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한다면 모두가 상생하는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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