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文學)에 있어서 반복법(反復法)은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같은 말이나 구절을 되풀이하는 수법이다. 또한 의미뿐만 아니라 표현 자체의 운율적 효과만으로도 문장의 흥을 돋우어 준다.
예를 들어 우리 시가(詩歌)에서 사용한 “옛날 옛날 먼 옛날”이라든지 “엄마 엄마 우리 엄마” 같은 표현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진정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고백도 정확히 표현하면 점층법(漸層法)에 빗대어 한 말이지만 이 역시 반복법의 약간 다른 빛깔일 뿐이다.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셀러요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경지를 인정받는 ‘성경’도 이 반복법을 통해 의미의 강조와 더불어 문학적 성가(聲價)를 높히고 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7장 7절, 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8절) 라고 했다.
여기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모두 같은 의미의 ‘반복’이다. 또한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니'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7절의 문장 전체를 반복해서 8절에 한 번 더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같은 문장이지만 표현을 달리해 반복함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음악에도 반복법이 있다.
'bis(비스)‘, 'terza(테르차)’, '도돌이표', 'D.S(dal segno, 달세뇨)', 'D.C(da capo, 다카포)‘, 'Simile(시밀레)’ 같은 용어는 모두 음악에서 반복을 요구하는 기호들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반복기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론도(Rondo)'이다. '론도'는 '둥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서 계속 반복해서 돌고 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론도형식’은 같은 주제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앞서 열거한 기호들은 단순히 되풀이되는 반복이지만 론도는 비교적 특이한 반복이다. 즉, 악곡의 형식에서 (A)라는 주제가 있다면 그 (A)라는 주제가 반복되는 사이에 (b)나 (c)같은 전혀 다른 주제를 끼워 넣는 것을 말한다.
기호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A] - (b) - [A] - (c) - [A] - (b) - [A] <큰 론도형식> [A] - (b) - [A] - (c) - [A] <작은 론도형식>
다시 말해서 동일한 주제의 선율이 되풀이되는 중간에 여러 모양의 다른 가락이 끼어드는 형식의 기악곡을 말한다.
론도를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생상스(C. Saint-Saens)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Introduction & Rondo Capriccooso in A minor Op. 28)]가 떠오른다.
이 작품명에서 ‘서주(Introduction, 序奏)’는 앞서 설명한 론도라는 악곡의 주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준비 단계로 연주되는 부분이고, '카프리치오소(Capriccioso)’는 자유롭게 혹은 기분이 들뜨게 환상적으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이 곡은 1868년에 완성되어 4년 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는데 평소 존경했던 [지고이네르 바이젠]의 작곡자인 '사라사테'에게 헌정되었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대단히 화려하고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으로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회 레파토리로 정하여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초반의 서정적인 선율이 점점 화려하고 경쾌한 선율로 바뀌며 삶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 준다.
일찍이 위대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는 "생상스 만큼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와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란 불가능하다"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이 ‘론도 풍의 반복’은 우리의 삶이요, 운명일 수도 있다. 매일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반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또 해가 뜨고.....』
‘해’가 떳다 지고 난 후에는 반드시 반복 해서 해가 뜨지만 그 사이를 ‘달’이 비집고 들어와 뜨고 지는 또 다른 반복이 행해진다.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 오고 여름 가고 가을 오고 가을 가고 겨울 오고 겨울 가고 또 봄이 오고.....』
곧 우리가 맞이할 여름이 분명 지난해에 겪은 같은 여름의 반복이건만 세월의 순환은 그사이에 가을, 겨울, 봄이 오고 가는 반복을 허용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또 눈이 퍼붓고.....』
바람이 부는 것도,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도 반복의 연속이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론도 (Rondo) 풍의 반복]인 것이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 좋지 않은 반복이 계속되고 있다. 비리와 거짓말의 반복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론도형식’의 반복을 연상케 한다. 그것도 ‘작은 론도형식’이 아니라 ‘큰 론도형식’이다. 즉 (A)라는 주제(비리)가 있다면 그 (A)라는 주제가 반복되는 사이에 (b)나 (c)같은 다른 주제(거짓말)를 끼워 넣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비리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남발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비리를 낳고 있는 것이다. 기호로 표시하면 [A] - (b) - [A] - (c) - [A] - (b) - [A] 이다.
비리와 거짓말이 정치의 속성이 되어버린 시대이고 보니 굳이 여, 야를 구별할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최근 잇따라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비리 의혹은 가히 참담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대장동’, ‘돈봉투’, ‘코인 로비’ 의혹 등이다. 이를 모두 한마디로 규정하면 ‘비리’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이 비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공복인 정치인들이 자신의 사명인 국태민안(國泰民安)보다는 사리사욕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덮기 위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참담한 모습을 보며 ‘이율곡’의 ‘후부일(朽腐日) 심지대하(深之大厦) 기국비국(其國非國)’ 즉 "날로 날로 더 깊이 썩어가는 빈집 같은 이 나라는 지금 나라가 아닙니다"라는 한탄의 말이 생각난다. 이는 1574년 이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에 적은 글귀다. 449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이 나라는 그 시절 조선의 암울한 비리의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참신한 반복이 필요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우매한 우리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눈 딱 감고 믿어버릴 만큼만 신선하면 그만인 그런 반복이 필요하다.
죽음마저 어쩌면 그런 반복 일지도 모르니까.....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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