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영어 알파벳(Alphabet) 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글자는 단연 'K'자일 것이다. 이 K자는 연예계의 한 분야인 ‘Pop‘앞에 붙여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순수 고전음악인 ‘Classic'으로 확대되어 K-Pop’, ‘K-Classic' 등의 용어가 언론에 서슴없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급기야 최근에는 음악분야 외에 정치, 사회 전 분야가 웬만한 단어 앞에 ’Korea'의 머리글자인 K자를 얹어 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얼마 전 코로나 정국을 맞아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된 것이 바로 ‘K-방역’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에서 생겨난 신조어인 듯하다.
더욱이 당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작년에 ‘K-방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올해는 ‘K-접종’으로 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2021, 1, 26 연합뉴스 보도)라며 ‘K-방역’에 이어 ‘K-접종’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 국민의 백신 접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영국은 2020년 12월 8일 화이자(Pfizer) 백신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접종했고 그 후 2개월 만에 자국(自國) 인구의 약 1/4인 1,500만여 명이 1차 접종을 마쳤으나(2021, 2, 15 MBC 보도) 그들은 England의 머리글자인 ‘E-접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였던 코로나에 대한 ‘K-방역’이라는 말이 세간(世間)에 널리 퍼지면서 각종 단어에 ‘K'자를 접두사로 붙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혹시 애국심의 발로(發露)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 단어 앞에 K자를 붙인다고 Korea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마치 다른 동물의 그림에서 머리를 지우고 사람의 머리를 붙인다고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아무튼 그 내용 자체가 허망(虛妄)하여 씁쓸한 마음이다.
음악적으로 두 가지 사례(事例)만 들어 보려 한다.
K-Pop
문자적으로 'Pop'이라하면 ‘Popular Music’ 즉 ‘대중음악’을 말한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1939년~1945년에 발발했던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과 미국에서 음반산업 등 상업성의 물결을 타고 탄생한 대중음악이다.
필자가 학창시절이었던 1960, 1970년대 ‘비틀즈’, ‘프랑크 시나트라’, ‘패티 페이지’, ‘엘비스 프레슬리’, ‘카니 프란시스’, ‘팻 분’, ‘클리프 리처드’, ‘닐 다이아몬드’, ‘죤 덴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불러 인기를 모았던, 소위 ‘팝송’이라 일컫던 노래들이 바로 그 당시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 즉 Popular Music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2월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이라는 정부시책을 추진한 바 있으나 이는 과거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문예중흥’ 정책의 제목만 ‘벤치마킹(Benchmarking)’했을 뿐, 내용 면에서는 문화예술분야에 무지(無知)한 정부의 어설픈 행정으로 이미 발족한 문화융성위원회나 행정의 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근 1년간 정책의 방향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다가 앞서 약 20여 년 전부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젊은 팝 가수들이 그동안 전혀 정부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놓은 해외에서의 한류(韓流) 붐(Boom)에 편승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들이 문화융성의 주체가 되고 말았다. 이를 통해 부각(浮刻)된 이름이 바로 ‘K-Pop'이다.
그러자 당시 ‘김’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해외문화원장에게 훈령을 내려 지역마다 연례적으로 K-Pop 경연대회를 열게 했고 국내에서는 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해 총 1만 5천석 규모의 K-Pop 전용 대형 아레나(Arena) 공연장 조성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문예진흥’을 위해 서울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하여 우리 음악예술 활성화에 기여했던 역사적 사실과,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이 ‘문화융성’을 위해 K-Pop 전용 대형 아레나 공연장을 조성하는 것은 퍽 아이러니(Irony)한 일이다. 영어 '아레나(Arena)'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 '아레나(Harena)'에서 온 말인데 '모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거 검투사들이 싸우며 흘리는 피를 흡수하기 좋도록 모래를 깔아놓은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바위와 같이 든든히 서야 할 문화예술 정책이 마치 모래와 같이 흩어질 모래정책은 아니었는지.....
또한 당시 ‘박’모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세계 팝(Pop)의 메카(Mecca)로 만들겠다면서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각국에 나가 있는 한국문화원을 ‘K-Pop’의 출장소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최근 우리나라의 팝 댄스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를 통해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선양하고 현대 4차 산업의 중심인 문화예술 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는 측면에서 ‘대단하다’라는 표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원래 ‘Pop’이란 영국, 미국의 상업성 대중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 장관은 한국을 ‘K-Pop의 본고장’이니, ‘K-팝을 통해 세계에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며 '아이돌', '걸그룹'들에게 해외 공연을 장려, 국제 앵벌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서양의 문화인 ‘Pop’ 앞에 'K'를 붙이면 한국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아이돌(Idol)'의 문자적 의미와 같이 '오류(誤謬)', ‘환영(幻影)’일 것이다.
한마디로 "알아야 면장을 한다." 즉 '알아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K-Classic
‘클래식(Classic)’의 사전적 의미는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이다. 쉽게 말하면 서양의 고전음악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어떤 음악평론가가 ‘클래식’이라는 단어 앞에 ‘K’자를 붙여 ‘K-Classic’이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서양의 고전음악 앞에 Korea를 상징하는 K자를 붙이는 것도 어색한데 게다가 ‘K-Classic 조직위원회’라고까지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조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 보통 ‘조직위원회’라 하면 올림픽 기구에서나 들어봄직한 용어인데 도대체 그가 만든 조직위원회는 클래식 음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과거 클래식의 본고장은 유럽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Austria) 출신인 ‘모차르트’의 음악을 두고 'A-Classic'이라 하지 않고, 독일(Germany) 출신인 ‘베토벤‘의 음악을 두고 ‘G-Classic'이라 하지 않는다.이 시대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음악을 애호하고 향유한다. K-Pop과 마찬가지로 ‘Classic’ 앞에 'K'를 붙인다고 Korea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K-오페라, ’K-오케스트라‘, ’K-트로트‘, 'K-발레’, 'K-국악‘, ’K-드라마‘ 등 예술적 명칭 외에도 ‘K-방역’, ‘K-푸드(Food)', ’K-축구‘, ’K-골프‘, ’K-미투‘, ’K-성형’, ‘K-출산‘, ’K-웹툰‘, ’K-가톨릭‘, ’K-국방‘, ’K-적폐‘, ’K-포퓰리즘‘, ’K-재난지원금‘, 'K-선거’ 등 수많은 신조어들이 난무할 전망이다.
문득 1984년 춘천에서 열린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이선희가 불러 대상을 차지한 ’J에게‘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 당시는 필자가 MBC-FM에서 방송을 하고있던 때였고, 또한 춘천은 어느 곳보다 좋아하는 지역이어서 그 기억이 생생하다. 과거 고교시절 가수 지망생이던 ’이선희‘는 ’장욱조‘라는 작곡가 사무실에 찾아갔으나 렛슨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마침 그곳에서 한 무명의 작곡자가 “이 노래는 부르겠다는 사람이 없네”라고 한탄하며 쓰레기통에 버린 악보를, 이선희가 작곡자에게 "이 곡을 제가 불러도 되겠느냐" 물었고 이를 허락받고 가져간 뒤 3년 후 ’강변가요제‘에서 이 곡으로 ’대상(大賞)‘을 차지했다. 당시 이 악보를 쓰레기통에 버린 작곡자는 ’이세건‘이다. 그 후 이선희는 이 ‘J에게‘ 라는 곡으로 KBS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했고, 1984년 KBS 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으며, ‘84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가요제 최초로 3관왕에 오르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J에게>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J 지난 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여울져 남아있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필자는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으며 팬의 한사람으로서 이선희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이선희씨, 지금의 트렌드(Trend)는 'J'가 아니라 [‘K'가 대세(大勢)랍니다.] 요즘 다행히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대체적으로 핑크빛 무드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J‘를 그리워하다가는 친일 인명사전에 오를 수도 있고, 또한 대세에 맞추어 지난날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J에게‘를 ’K에게‘로 바꿔 부른다고 다시 한번 최고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 ’J‘를 잊을 수 없다면 ’K-J에게’는 어떨런지요? 그런데 서두르셔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 냄비 기질이 있어서 언제, 어떤 이니셜(Initial)로 유행이 바뀔지 모르니까요.....”ψ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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