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스쳐간 여인

강인 | 기사입력 2023/05/30 [10:07]

[강인 칼럼] 스쳐간 여인

강인 | 입력 : 2023/05/30 [10:07]

어느덧 봄이 서서히 물러가고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다.

 

지난 우리들의 봄날은 찬란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갗이 메말라가고 혀뿌리가 좁다랗게 오그라드는 카산드라(Kassandra)의 갈증뿐인 나날이었다. 이제 나른했던 봄기운이 꺼져 드니 오랫동안 기억 너머로 미뤄두었던, 지난날 잠시 스쳐 간 한 여인이 생각난다. 그때도 오늘 같은 여름의 초입이었다.

 

그 여인은 필자가 1980년대 초반 MBC-FM에서 심야 클래식 음악방송을 진행하던 시절 내 방송의 애청자였다. 그는 일본 여인이다.

 

▲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일본 여인 ‘초초 상’의 모습

 

한국말이 어눌(語訥)한 탓에 다섯 마디 말 중에 두, 세 마디는 자연스레 일본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하고 속삭인다. 우리말로 '미안하다'라는 뜻이다. 나는 그런 그 여인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필자는 그 여인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늘 내게 전화로만 이야기했다. 첫 번 전화를 통화했을 때 나는 문득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나비부인 ‘Madam Butterfly’]의 ‘초초 상’이 떠올랐다. 일본 여성이라고는 지난날 L.A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에 출연한 일본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와 무대 뒤에서 단 한 번 잠시 인사한 적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한국에 온 지 2년 남짓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늘 시치미를 뗀다. 실제로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말도 이해하지만 말하는 것은 서툴렀다. 제 딴에 어려운 말을 한답시고 우물거릴 때는 답답함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앞섰다.

 

"점심밥 먹으셨셔요?  아하! 스미마셍, 제가 한국말이 셔투러셔요....."라고 말하고는 구슬이 구르는 듯한 소리로 깔깔대며 웃는다. 또한 자기의 직업은 의류 디자이너로 모 백화점에 납품하는 의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여인으로부터 “한 번 만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차례 반복해서 만나자고 했다. 그때마다 필자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럴 것까지 있겠느냐?”, “전화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라면서..... 공영방송 진행자로서 잘 모르는 일본 여성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평소 그 여인의 목소리는 참으로 맑고 영롱했다. 그런 그 여인의 목소리가 어느 날 어두워져 있었다. 우울한 날이라는 것이었다.

 

통화 도중 수화기를 통해 묵직한 첼로의 선율이 들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슈만의 「첼로 콘체르토」에요. 아주 많이 좋아해요. 전 우울할 땐 이 곡을 듣는답니다. 저, 첼로 잘 못 켜요. 학교 다닐 때 조금 배웠어요." 

 

슈만(Schumann)의 「첼로협주곡 ‘Cello Concerto A minor Op. 129’」는 이런 계기로 나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날도 그 여인은 이 곡을 켜놓고 전화를 했다. 우울한 음성이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무엇 때문에 우울하냐고?.

 

그는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 여인은 서툰 우리 말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과거 일본이 전쟁할 때 강제 동원된 정신대(挺身隊)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호칭하였음) 일본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자세히 알았습니다. 저도 일본사람이지만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분노심까지 생깁니다."라고 하면서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선생님,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지금까지 그 여인의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벌써 40년이 지난 오래전 이야기지만 필자는 슈만의 첼로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그 여인이 생각나곤 한다.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한 미안함과 함께.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슈만은 46세의 나이로 정신이상이 된 낭만주의의 사색적 음악가이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아내였던 ‘클라라(Clara Schumann)‘와의 사랑은 차라리 현란한 불꽃이었다. 그런 불꽃을 이 첼로협주곡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드보르작(Dvořák), 랄로(Lalo), 보케리니(Boccherini) 등 여러 작곡가의 훌륭한 첼로협주곡들이 있지만 이 곡만큼 낭만성이 깃든 곡은 없을 것이다.

 

모두 3악장의 구성이지만 전 악장을 구분 없이 계속 연주하는 단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이유로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오는 것을 혐오해서 그렇게 작곡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곡 전체에 긴밀한 느낌을 주어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봄은 화려하고 찬란한 계절이면서도 왠지 쓸쓸하고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많은 악기 중에서 첼로는 단연 우수(憂愁)의 악기이다. 그리고 첼로로 연주한 악기 중 가장 슬픈 곡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슈만의 첼로협주곡 ’제 2악장‘을 꼽을 것이다.

 

오늘도 수치스러운 역사의 왜곡 앞에서 슈만의 첼로협주곡을 들으며 우울함을 달래고 있을 그 일본 여인을 떠올려본다.

 

앞서 필자는 “슈만의 첼로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그 여인이 생각나곤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최근 양국이 미래의 번영을 향한 화해,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한일(韓日) 정상의 희망찬 만남의 모습이 그 여인을 더욱 생각나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날, 음악을 통해 잠시 곁을 [스쳐간 여인]이지만 오늘따라 불현듯 지난날 그 여인과의 추억 속에 나의 마음이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그 여인에게서 머지않아 한일 간의 갈등이 아름답게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기고 ,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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