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
해초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 찢어진 그물을 아기 새가 받아먹고
토해내지 못하고
물고기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 라이터와 병따개를 아기 새가 받아먹고
소화하지 못하고
오징어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 하얀 비닐봉지를 아기 새가 받아먹고
일용할 양식으로 일용한 죽음의 배식
빙하 조각처럼 떠돌다 해안에 도착한 거대한 스티로폼 더미에 갇혀
깃털 하나 펴지 못하고
쓰레기로 꽉 찬 폐기물이 되었다 찍찍 유리에 긁히는 소리를 내며
죽어서도 썩지 못하고
# ‘지지야’. ‘지지?’ 놀이터 모래 위에 떨어뜨린 과자를 주우려던 아기는 할머니가 도리질하며 말리자, 과자를 주우려 숙였던 작은 몸을 일으켜 할머니 곁에 앉더니, 모래 위에 떨어진 과자와 할머니를 번갈아 본다. 도리질하던 할머니가 얼른 모래 위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손수건을 꺼내 아기 손을 닦아준다. 어린이 놀이터 모래 속에는 유리 조각, 자갈, 담배꽁초, 누군가 뱉었을 타액, 부패가 진행된 과자나 빵 부스러기 등으로 오염되어 있을 수 있고, 애완동물이나 길고양이, 또는 과자부스러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새들의 배설물에서 나온 기생충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아기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없기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으려 했다. 선험적 지식을 가진 할머니에게 유아어 ‘지지’라는 말로 아기는 바닥에 떨어진 과자는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상황이 반복 학습되면, 아기 스키마는 조절과정을 거쳐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으면 안 된다는 지식이 조직화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능력은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피아제(Jean Piaget)는 도식(Schema)과 적응(Adaptation)의 개념으로 인간의 인지발달을 설명했다. 스키마는 사고의 틀이다. 예컨대, 5세 유아가 ‘날아다니는 물체는 새’라고 배우고 반복된 학습과 일반화된 지식이 구조화되면서 ‘날아다니는 물체는 새와 같다’라는 도식이 구조화된다. 적응은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djust)기능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며 환경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도식을 더욱 깊고 넓게 조직화한다. 동화는 기존 도식에 맞추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여 스키마를 확장 시킨다. 예컨대, 엄마의 젖의 맛이 도식화된 유아는 달콤하고 따스하며, 마시거나 빨아먹기 쉬운 음식에 대해서 쉽게 자신의 먹걸이 도식에 포함 시킨다. 조절은 기존 도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으로, 유기체는 이런 상황에 불평형(不平衡) 상태를 겪게 된다. 예컨대, 감기에 걸렸을 때 처음 맛본 쓴맛의 시럽을 먹지 않으려는 유아에게 엄마처럼 신뢰성 있는 대상이 먼저 먹는 시범을 보이면, 유아는 자신의 기존 도식을 변경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쓴맛의 시럽도 먹을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은 동화와 조절을 통해 기존의 도식을 새롭고 더욱 복잡한 도식으로 재구성하는 조직화(organizing)로 인지를 발달시킨다고 보았다.
“해초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찢어진 그물”, “물고기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라이터와 병따개”, “오징어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하얀 비닐봉지”들을 “아기 새”에게 먹이는 어미 새에게는 먹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변별하고 조절하는 인지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뿐만아니라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선험적인 지식으로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을 알려주는 지혜로운 할머니나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 어느 어미가 자기 “새끼”에게 먹으면 소화되기는커녕, 한 번 뱃속에 들어가면 배설조차 되지 않아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들을 먹이고 싶겠는가.
“빙하 조각처럼 떠돌다 해안에 도착한/거대한 스티로폼 더미에 갇혀” “깃털 하나 펴지 못하고”, “쓰레기로 꽉 찬 폐기물이 되”게 만든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우리가 버리는 산업폐기물과 쓰레기와 플라스틱과 비닐과 화학물질들로 자연이 망가지면 그 폐해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시인이 전언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의 현실은 새들만의 사건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빨간불 깜박이는 지구의 환경 오염에 대한 실천적인 전략들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새들보다는 월등하게 높은 인지능력을 지닌 우리 인간들이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실천적 전략과 행동을 동화와 조절을 통해 재 조직화해야 한다. ‘갈매기의 날개짓 한번이 기후를 영원히 바꾸기에 충분하다’는 기상학자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의 전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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