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동그라미 세상

강인 | 기사입력 2023/06/12 [10:11]

[강인 칼럼] 동그라미 세상

강인 | 입력 : 2023/06/12 [10:11]

눈만 뜨면 세상에는 곡선(曲線)이 보인다. 자동차 바퀴의 둘레, 한 잔의 술을 담은 술잔,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결국 곡선을 ‘원(圓)’으로 대표하고 만 셈이지만, 곡선이 지향하는 것이 완벽한 곡선의 형태인 원이라는 생각을 고칠 수가 없다.

 

국제적으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대회의 상징도 다섯 개의 원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 이를 '오륜기(五輪旗)'라고 한다. 이 오륜 마크는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에 의해 1914년에 창안되어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 올림픽 때부터 게양되었다.

 

오륜, 즉 다섯 개의 동그라미는 세계 다섯 대륙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것을 색깔로 구분하여 ‘파란 원은 유럽’, ‘노란 원은 아시아’, ‘검은 원은 아프리카’, ‘초록 원은 오세아니아’, ‘빨간 원은 아메리카’를 의미한다. 또한 다섯 개의 원이 고리 형태로 얽혀있는 것은 세계의 결속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불교(圓佛敎)에서는 원이 곧 불교의 진리와 세계로 통한다고 한다. 원은 처음과 끝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주장대로 모든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그러하듯이 원이란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원은 곡선의 완벽한 형태로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직선(直線)은 어떠한가?

 

곡선의 관념이 용서와 이해 그리고 타협이라면, 직선은 투쟁과 결별 그리고 소멸을 의미한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는 정치계의 행태(行態)가 용서나 이해나 타협보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투쟁과 결별과 소멸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이른바 정치의 속성은 아무래도 곡선보다는 직선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질 정치에 매몰(埋沒)된 직선적 방법으로는 정부가 새 시대를 꿈꾸며 추진하는 ‘국민통합’ 역시 구호에 그칠 뿐, 결국은 허사(虛事)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또한 동양(東洋)이 곡선의 세계라면 서양(西洋)은 직선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으로 치면 과거는 곡선이며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아무래도 직선에 가까울 듯하다.

 

미술(美術)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세시대의 화가들은 인물의 부드러운 곡선을 아름다움의 가장 높은 가치로 보았다. 그러나 현대의 화가들은 '비구상(非具象)'에 직선을 많이 등장시킨다.

 

그런가 하면 음악(音樂)에 있어서 낭만주의 음악은 부드럽고 흘러내리듯 유연하며 마치 꿈결 같은 구름으로 피어오르는데 이러한 느낌은 아무래도 곡선에 가깝다. 그러나 현대음악은 찌를듯한 굉음이나 분열과 무조(無調)의 기법 등이 다분히 직선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의 파괴를 의미하기 위해서는 직선적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곡선과 직선, 그 어느 하나 만에 편중하여 살기는 어렵다. 이는 인간 근원의 고독은 곡선이나 직선 중 어느 한쪽을 권태로 변모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선과 곡선은 양쪽 모두 늘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어쩐지 직선보다는 곡선을 생각하는 마음이 편안한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 원에 관하여 이야기하다 보니 클래식 음악 중에서 '근대 클래식의 이단아'라 불리는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이 1928년에 작곡한. [볼레로 ‘Bolero‘]라는 음악이 떠오른다. ’볼레로‘는 원래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3박자의 느린 민속 무곡(舞曲)을 말한다.

 

이젠 5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지만 과거 1970년 초반 당시 시중(市中)에는 소위 '극장식 카바레'가 성행했는데, 젊은 시절 필자는 그곳에서 볼레로라는 음악에 맞추어 군무(群舞)하는 무희(舞姬)들의 춤을 인상 깊게 본적이 있다.

 

모리스 라벨도 술집에서 우연히 이 민속 무곡을 듣고 감흥이 일어나 러시아의 유명 무용가인 '루빈시테인(Rubinstein, Ida)'을 위해 만든 곡이 바로 볼레로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 ’쉬운 멜로디‘, ’반복적인 리듬‘, ’다양하고 변화있는 악기편성‘ 그리고 ’점차적인 크레센도(Crescendo, 점점크게 라는 악상기호)‘라 할 수 있다.

 

볼레로가 연주되는 약 17분간 청중을 숨 막히게 휘어잡는 ’단 하나의 멜로디‘와 그 멜로디의 ’크레센도적 반복‘은 마치 작은 원이 굴러가며 점차 큰 원을 만들어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모습은 직선보다는 곡선, 즉 반복하며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원의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특성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래서 필자는 이 라벨의 볼레로를 대표적 '원(圓)의 음악' 이라 부르고 싶다.

 

사람의 마음이 극도로 강퍅(剛愎)해져 가는 시대에 굉음과, 분열과, 파괴의 '직선적 세상' 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용서와 이해와 타협과 협력의 [동그라미 세상]을 흠모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기고 ,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