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1) / 권정생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6/19 [09:56]

[이 아침의 시]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1) / 권정생

서대선 | 입력 : 2023/06/19 [09:56]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1)

 

주중식한테서 소포 하나가 왔다.

끌러보니 조그만 종이상자에 과자가 들었다.

가게서 파는 과자가 아니고 집에서 만든 

것 같다.

소포에다 폭탄도 넣어 보냈다는데.....

잠깐 동안 주중식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했다.

십 년이 넘도록 알고 지냈지만 원한 살 일은

없는 것 같다.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니 아무

렇지 않다.

좀 더 큰 것을 집어 먹어봐도 괜찮다.

한 개를 다 먹고 다섯 시간 지나도 

안 죽는다.

겨우 마음이 놓인다.

주중식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돈독함이 확인되었다.

 

# ‘과자 사준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도 따라가야 하나요?’ ‘아니요’ 집으로 돌아가는 유치부 아동들에게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다짐하는 말씀이다. 어린 아동들에게 가장 부족한 대처전략 중 하나는 낯선 사람을 의심하기보다는 보이는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쳐도 배운 것을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능력이 미성숙하고, 가짜 친절과 선물 공세 속에 가려진 나쁜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정보력이 차단되어 있거나 고립된 환경 속에 사는 노인의 경우도, 합리적 의심 능력이 줄어들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소포 하나가 왔다./끌러보니 조그만 종이상자에 과자가 들었다./가게서 파는 과자가 아니고 /집에서 만든/것 같다.” 권 시인이 덥석 과자에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과자를 보낸 사람이 “소포에다 폭탄도 넣어 보낸”적이 있었다는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내 준 과자가 순수한 호의인지 아니면 다른 저의가 숨어 있는지, “집에서 만”들었다는 “과자”를 앞에 두고 권 시인은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 는 데카르트(Renĕ Descartes)의 말을 떠올렸던 것일까. “잠깐 동안 주중식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있는지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과자” 상자를 보낸 사람과 “십 년이 넘도록 알고 지냈지만 원한 살 일은/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십 년이” 넘는 인간관계 속에 정말로 믿어도 좋을 만큼 신뢰가 형성되었는지 알고 싶었던 권 시인은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았다.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까? 신뢰 형성의 첫째 단계는 부모와 자식의 체계 속에서 형성된다. 정상적인 가족의 위계 안에서는 서로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교육된다. 미성숙한 자녀들이 사회 속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베이스 캠프인 부모에 대한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족에게서 배운 ‘상호적 이타주의 (reciprocal alturism)’는 사회화 되어 사회생활의 근원이 된다. 신뢰 형성의 두 번째 단계는 ‘문화가치의 공유(shared cultural value)’다. 문화는 정직한 행동이나 약속의 이행 등, 특정한 형태의 도덕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거짓말, 간통, 도둑질, 살인과 같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제재한다.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제도(institutions)’를 통한 신뢰의 형성은 가족이나 친구, 또는 공유하는 문화만으로 다양한 사회를 커버할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되기 어려울 때, 법을 제정하고, 법치로 다스린다. 신뢰 형성의 마지막 단계는 ‘반복적 상호작용(repeated interaction)’이다. 과거의 행동을 기억하고, 기회주의를 적절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잘 수행해야 하는 반복적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를 발달시킨다.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니 아무/렇지 않다./좀 더 큰 것을 집어 먹어봐도 괜찮다./한 개를 다 먹고 다섯 시간 지나도/안 죽는다./겨우 마음이 놓인다./주중식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없이/돈독함이 확인되었다.”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에서 연유한다. 누군가를 믿고 신뢰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신뢰란 상대에게 정직함과 예측 가능함, 호의적 행동과 같은 것을 기대하는 심리적 부산물이기에 신뢰는 ‘자신의 경쟁력’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해야 할 증명도’ 많기에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신뢰는 도자기와 같다. 한번 깨지면 아무리 좋은 접착제로 붙여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뢰가 바탕이 될 때, 선한 의지가 상승될 수 있다. 신뢰란 ‘팔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 중에 하나라는 권 시인의 전언이 정신의 거울을 닦게 한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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