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라일락의 말 / 김선영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7/17 [09:51]

[이 아침의 시] 라일락의 말 / 김선영

서대선 | 입력 : 2023/07/17 [09:51]

라일락의 말

 

 내가 말을 두렵게 여기는 것처럼

 라일락은 보랏빛 몇 마디를 황홀하게 완성하고 침묵

 해 버렸습니다

 쓸쓸한 꽃나무 맞은편에

 나는 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그 꽃나무의 떨어진 꽃송이만큼의 부피가 되어서

 나무 곁에 앉아 있을 때

 라일락의 말이 나의 안에 전해 왔습니다

 <슬프더라도 말을 내지 않음은

 가슴에 꽃이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꽃들까지 가슴에 모였으므로

 

# ‘돌을 입에 물고 티우라스 산을 넘는 철새’가 있다. 철새 두루미가 넘어야 하는 티우라스 산 꼭대기에는 독수리가 살고 있다. 티우라스 산은 튀르키예 남부 토로스산맥을 일컫는데, 철새인 두루미는 티우라스 산을 넘어 이동한다. 두루미는 날 때 요란한 소리를 내는데, 티우라스 산을 넘는 두루미 떼의 요란한 소리는 독수리에게 먹이가 도착하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그러나 연륜이 있고 지혜로운 두루미들은 돌을 입에 물고 침묵한 채, 산 정상을 넘기에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티우라스 산을 넘는 철새 두루미의 지혜를 전언하는 우화다.

 

두루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독수리의 공격을 피하려 입에 문 돌의 무게처럼, 모든 말에는 무게가 담겨있다. 말의 무게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말의 무게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사회에서 이룩한 성공의 질량과 성공한 사람의 말의 무게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지도층이거나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십 년 쌓아 올린 인간관계에 등을 돌리거나, 수치심은 잊은 채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경우를 본다. 시류에 편승하고 편견과 아집의 눈가리개를 쓰고, 평생에 걸쳐 이룩한 타인의 노력과 아름다운 자취를 질투하고 애써 무시하는 초라한 인성과 감춰진 허약과 노예근성을 드러내는 말들이 황사처럼 햇빛을 가릴 때, 말의 무게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말이 제값의 무게를 지니려면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해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말이 길 필요는 없다. 미국 뉴욕대 의대 인지신경센터 등 10여 개의 기관 공동연구에 의하면, 귀 기울여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 뇌가 훨씬 젊고 뇌 기능도 더 발달 되어 있으며, 인지 회복능력도 빠르다고 보고하였다. 인품과 전문성과 순간 대응력 등 종합적인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 말이다. 현대는 표현의 시대이지만 말에는 질서가 있고, 설득의 힘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말의 순발력은 속도가 아니라 효용성이다. 생각이 말로 바뀌어 입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걸러주는 과정이 꼭 필요한 이유다. 말이 신중해지려면, 말을 시작하는 타이밍을 한 템포 늦출 수 있어야 한다. 한번 늦춤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한번 늦춘 시간 속에서 할 말을 정제한다면, 말의 가벼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말에는 진실성이 중요하다. 말의 앞뒤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만약 실수를 했다면 바로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진서>라는 책에 ‘수석침류(漱石沈流)’의 고사가 나온다. 진나라 때, 손초라는 사람이 노장사상에 빠져 친구 완제에게 ‘돌을 베개 삼아 자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해야 할 것을 ‘돌로 양치질을 하고 물로 베개를 삼겠다’고 실수를 했다. 왕제가 웃으며 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자, 손초는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물을 베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성인 허유(許由)처럼 부질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조약돌로 양치질하겠다는 뜻’이라고 변명했다. 자존심을 지키려 변명을 함으로써 신뢰를 잃은 것이다.

 

“내가 말을 두렵게 여기는 것처럼/라일락은 보랏빛 몇 마디를 황홀하게 완성하고 침묵/해 버렸습니다”라는 시인의 전언에서, 말과 침묵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는 시인의 신중함과 단정한 삶의 모습이 “라일락” 향기로 다가온다.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필요한 말만 하고, 잘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태도도 말의 무게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갖출 수 있다. “보랏빛 몇 마디를 황홀하게 완성하고 침묵”하던 라일락의 모습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독수리가 기다리는 산 정상을 넘을 때, 돌을 입에 물고 위기를 건너는 두루미의 지혜에서 말의 무게를 배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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