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
시골길을 가다가 밭에 씨 뿌리는 사람을 보았네
말랑말랑 잘 구어진 흑밀빵 같은 흙에 씨를 뿌리는 사람을 보았네
씨를 뿌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밭고랑 같은 주름살로 웃는 사람을 보았네
봄비가 밭에 뿌린 씨앗의 실뿌리처럼 내리는 것을 보았네
# ‘엉덩이와 궁둥이는 어떻게 달라요?’ 초롱한 눈을 깜빡이며 묻던 어린 딸 앞에서 멈칫거리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 허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몸에 일부인 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도 모르고 지냈다니. 여름방학 과제 속에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부위를 쓰라는 문제에 딸아이는 ‘반딧불이 궁뎅이’라고 썼는데, 담임 선생님은 빨간 볼펜으로 ‘궁뎅이’를 ‘궁둥이’라는 표준말로 고쳐주고, 옆에다 반딧불이는 곤충이기에 ‘꼬리’로 쓴다고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 ‘엉덩이와 궁둥이는 어떻게 다를까요?’라는 첨삭까지 붙여 주었다. 엄마인 나도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딸과 함께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그 후로 딸아이는 국어사전 을 곁에 두고 수시로 궁금한 낱말을 찾아보기도 했고, 사전 속 새로운 낱말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방학 과제 속에 첨삭해준 질문과 새로운 낱말의 “씨앗”이 딸의 정신 속에 뿌리내려 국어사전의 텃밭에서 다양한 낱말을 만나며 성장했다. 또래 친구들이 외국어 사전에 열중할 때, 딸아이는 국어사전도 늘 곁에 두었다.
‘너는 손이 참 아름답구나’. 말썽을 일으켜 대안학교인 서머힐(Summerhill School)에서 퇴교당하고 싶었던 학생이 그의 어머니가 교장 선생님과 마지막 면담을 하는 동안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었을 때,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자신에게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선생님의 한마디 말씀의 “씨앗”이 그를 불러세웠다고 했다. 그는 자퇴 면담을 왔던 어머니에게 좀 더 학교에 남겠다고 했다. 스스로 흥미를 느꼈던 목공 일을 배워 교내의 망가진 의자나 가구를 고치며 즐거움을 느꼈던 학생은 나중에 사고로 육신이 부서졌거나 고장 난 사람을 고쳐주는 유명한 외과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속에 아무리 다양한 지식이 넘쳐도, 자신의 전인격을 걸고 현장에서 직접 학생을 만나는 선생님의 선한 영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선생님도 “씨앗 뿌리는 사람”이다. 학생의 정신의 밭에 발달 시기에 필요한 씨앗을 뿌려준다. “씨앗”은 생명이요 만물의 근원이다. 적절한 시기에 흙 속에 뿌려져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을 수 있다. 선생님은 농사짓는 사람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말랑말랑 잘 구어진 흑밀빵 같은” 정신의 밭이 준비되었을 때, 성장발달에 필요한 씨앗을 뿌려주고, 보살피고 바람직한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촉진시켜 준다. 때론 부모도 놓칠 수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찾아내기도 하고, 격려와 칭찬으로 여린 싹들이 활짝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돕고, 웃자란 가지는 다듬어 주고, 잡초가 자랄 땐 세심하게 제거해주기도 한다. 인간 교육은 백 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 농사’이기에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다.
선생님께서 뿌려주는 다양한 씨앗들이 우리 자녀의 정신 속에서 튼실한 “실뿌리”로 터를 잡을 때, 어떤 기후변화나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씨를 뿌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밭고랑 같은 주름살로 웃”으며, 아이들 정신의 밭에 “뿌린 씨앗”이 “실뿌리 내리는 것을” 보기 위해 “봄비” 같은 격려와 보살핌과 햇살 같은 사랑과 전문성을 갖추고 우리의 자녀를 만나는 선생님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에서, 우리 자녀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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