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사막에서는 가난조차 주먹 쥔 손을 놓는다
오직 새파란 하늘과 단둘이 웃통 벗고 높고 낮음 없이 씨름을 한다
먹이 구하러 나왔던 전갈 한 마리 사막 여우 한 마리 누가 이길지 모르는 들판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소란을 피우다 별무더기 덮고 잠이 든다
# ‘끄르륵 끄르륵’ ‘그래그래, 알았어’ 고추 딸 때는 나뭇가지에 앉아 내려다보기만 하던 물까치들이 토마토를 따려 하자, 목청을 돋우며 소리를 낸다. 매년 토마토 농사는 새들과 나누어 먹는 반 농사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만 쪼아 먹는 물까치는 “공생”하는 이웃이다. 물까치는 꽁지 날개가 푸른 색깔이어서 떼를 지어 밭으로 날아들면 마치 시냇물이 흘러드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우는 소리는 탁하고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빨갛게 익은 토마토만 쪼아 먹기에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잘 익은 토마토를 식탁에 올리기 쉽지 않다. 그래도 집 주변 나무에 둥지를 짓고 한입 가득 벌레를 잡아 둥지로 날아들며 새끼를 키우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굳이 독한 약을 뿌리지 않아도 집 주변 벌레의 생태계를 적절하게 유지 시켜 주니 어여쁘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 “공생” 아닌 것이 없다. 식탁에 올린 붉은 토마토를 한입 깨물며, 토마토 어린 모종의 뿌리를 잡아주고 실뿌리들이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운 수많은 박테리아와 공기를 순환시켜준 지렁이와 물과 햇빛과 바람과 과도하게 벋어나간 가지와 순들을 알맞게 잘라주고 지지대를 세워준 보살핌과 노란 토마토꽃을 잊지 않고 찾아준 뒤엉벌과 나비와 곤충들의 노고와 협동을 생각한다. ‘코끼리처럼 힘이 세지 않아도 고래처럼 거대한 몸집을 지니지 않아도,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지 않아도’ 인간이 지구에서 먹이사슬의 상위층을 차지하게 되었던 이유를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간의 협력하는 태도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의 힘이라고 보았다. 만약 광화문 광장에 침팬지 백 마리와 인간 백 명이 있다고 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건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침팬지들은 각자 자신의 행동에 집중할 뿐이지만, 인간은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한다. 그뿐이랴,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사회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서로 협력할 줄 알고, 이야기를 만들 내는 상상력의 힘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이외에도, 도구적인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Homo paber)’, 저항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레지스탕스(Homo resistance)’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인간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와 같은 치명적 질병들이 잠복해 있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는 산불과 빙하가 녹고 있다는 기사들과 점점 사막화되는 대지들이 기후변화를 더욱 절감하게 한다. 우리 삶에 필요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디선가 오늘도 말없이 멸종되고 있다. 생명체들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막에서는/가난조차/주먹 쥔 손을 놓는다”. “오직 새파란 하늘과 단둘이/웃통 벗고/높고 낮음 없이/씨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명을 생각하는 시인은 “공생”의 삶을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보살피지 않으면 자신도 생존할 수 없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할 때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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