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복검(李離伏劍). 법관 이리(李離)가 스스로에게 사형을 집행하여 칼에 엎어져 목숨을 끊은 일에서 유래된 말.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 사법관 이리(李離)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요즘으로 말하면 검찰의 권한인 기소(起訴)와 법원의 재판(裁判)을 모두 맡고 있는 사법장관이었는데, 평소 강직하면서 엄정한 관리였다.
어느 날, 이리는 한가한 틈을 타 자신이 판결한 재판기록을 살펴보다가 십여 년 전 거짓 증언자의 말을 믿고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서 죽게 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하급관리의 잘못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지는 사법관이기에 모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리는 스스로 옥(獄)에 갇히고 사형판결을 내려 죽고자 했다. 자기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했으니 그 책임으로 자신도 사형이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금인 문공이 옥에 찾아와서는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실무를 담당한 부하의 잘못 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이리는 이렇게 말한다. “신(臣)은 담당 부서의 장관으로서 아랫사람에게 직위를 양보하지 않았고, 많은 녹봉을 받으면서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판결을 잘못 내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죄를 부하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문공은 “그런 논리라면 너를 사법관으로 기용한 나한테도 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이리를 다시 용서했다.
그러나 이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법관이 법을 잘못 적용하면 자신이 그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 판단하여 남을 죽이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신이 이러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것으로 믿고 사법관으로 삼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짓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호위병의 칼에 엎어져 스스로 자결하여 사형을 집행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순리열전(順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지금부터 2,650년 전의 일이다.
전제군주 때인 춘주시대는 사법관이 기소(起訴)와 판결을 모두 담당했다. 지금 검찰과 법원의 역할을 함께 맡고 있었던 것이다. 죄인을 다루는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은 다반사였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형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그 때 인권(人權)은 더더욱 보호받지 못했던 시기다.
그런 때인데도 사법장관은 자신의 잘못된 재판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을 부하들의 잘못으로 치부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죽음을 택했다. 당시에 그런 강직하고도 공평무사한 사법관이 존재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지금 대한민국의 사법(司法)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 기록으로 본다면 수천 년 전에는 사법관들의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감수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예 그런 법(法)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이는 검찰권과 재판권을 갖고 행사하는 검사와 판사들의 양심에 무조건 모두를 맡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시대인 오늘, 그런 양심적인 영감님(권위주의 시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사와 검사들에게 영감님이라고 호칭했다)들이 얼마나 있을까.
수천 년 전의 사법관 이리처럼 자신의 기소(起訴)와 판결(判決)을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공정하고도 정의로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검사와 법관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은 기우(杞憂)인가.
아니, 자신들의 기소(起訴)와 판결(判決)이 옳았는지 그 옛날의 사법관 ‘이리’처럼 다시 되짚어보기나 하는 검사와 판사들이 있기는 하는 건지도 함께 의문이다.
입법과 사법, 행정으로 나뉘는 3권 분립제도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기본 제도이다. 그 중 검찰은 행정권력 중 독보적인 권력을 갖고 있고, 사법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서 재판을 하는 헌법기관이기에, 두 기관 구성원들인 검사와 법관들은 인권을 비롯한 국민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검사와 법관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단해야 하는 것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이 잘못된 행위를 한 뒤 설령 양심의 가책을 받더라도, ‘이리’의 잘못된 판결처럼 이미 어떤 국민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만 뒤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제군주시대 때 자신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사형을 집행해 목숨을 끊은 법관의 이야기를, 국민 주권시대인 지금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져만 가고 있어서 일 것이다.
송금호(소설가)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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