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길
새길은 하늘로 날 듯 간다 산중 깊은 골 터널조차 쉬 뚫는다
내려다보이는 옛길은 하릴없이 햇볕을 쬐고 있다 마른 차선만 버짐처럼 남은 저 길이 뜨거웠던 적 기억하라 땀을 받고 큰 숨을 받고 세상을 만드는 데 도왔다
옛길은 새길에게 자리를 내주고 두렵지 않다 두렵다면 길이 아니다
# ‘저 “새길”이 완성되면 철새 보러 가는 길이 단축되고 편하게 갈 수 있을 거요’ 용인에서 양지 가는 고속도로 너머로 높게 치솟은 기둥들을 가리키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저 길 완성될 때까지 건강 하자고 추임새를 넣었다. 세종에서 포천까지 이어질 서울 북부 고속도로가 “하늘로 날 듯” “길 위의 길”을 내고 있었다. 포천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매년 겨울 세 시간 가까이 고속도로와 국도를 교차하며 철원 들판까지 만나러 갔던 철새 두루미 가족을 더욱 쉽고 빠르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영동고속도로는 주말이면 동해안으로 달려가는 차들이 밀물처럼 흐른다. 인근에 볼일이 있을 땐 고속도로보다는 “옛길”을 이용하는 것이 한가롭다. 구불거리는 길가 옛날 주택 담 아래 소복하게 핀 채송화를 만날 수도 있고, 겨울을 준비하는 텃밭에서 고개를 내민 김장배추 모종도 만날 수 있다.
‘삶의 희망(Toumai)’이란 별명을 가진 사헬란트로푸스 챠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는 600만 년-700만 년 전 화석으로 중앙아프리카 차드 북부 두라브 사막에서 발견되었다. 인류의 가장 원시적 조상일 가능성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 생명체가 나무 위의 생활을 버리고 나뭇잎, 씨앗, 식물의 뿌리와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으며 살기 위해 처음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를 생각한다. 침팬지보다는 약간 작은 뇌, 경사진 얼굴, 두드러진 눈두덩, 작은 송곳니와 두개골 중앙부에 있는 대후두공(foramen magnum) 등의 특징은 유인원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고 한다. 기후의 변화와 숲의 감소 같은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인류의 조상이 처음 광활한 대지 위에서 사족보행과 이족보행을 병행하며 바라보았을 “길” 없던 땅을 생각한다. 초원지대에선 먹거리를 얻기 위해 더 멀리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멀리 이동하는 데는 네 발 보행보다 두 발 보행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기에 점차 이족보행으로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진화인류학자 허먼 폰처(Herman Pontzer)는 직립보행은 네 발 보행보다 에너지를 75%나 절약할 수 있는 데, 그 이유는 확장된 고관절과 긴 다리 덕분이라고 했다. 인류의 조상이 먹거리와 물을 얻기 위해 수도 없이 걸었던 땅 위로 “길”이 생겼을 것이다.
‘인간은 길을 만드는 동물이고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그 길을 따라 이루어진다’. 나무 위의 생활에서 땅 위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먹거리와 물을 구하러 다녔던 우리의 조상들이 한 땀 한 땀 시침질하듯 걸어서 만든 “길” 위에서 자손을 키우고, 사회를 조직하고,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었다. 새로운 공법과 새로운 욕망으로 만들어 가는 “새길”의 위용이 아무리 거대하여도, 우리 선조들의 “땀을 받고/큰 숨을 받고/세상을 만드는데 도왔”던 “옛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려다보이는 옛길은 하릴없이 햇볕을 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저 길이 뜨거웠던 적 기억/하라”고 시인은 전언한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방법,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등, 모든 새로운 것들은 과거의 결과물을 참조 준거 삼아 태어난다. “옛길은 새길에게 자리를 내주고 두렵지 않다/두렵다면 길이 아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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