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 이름이 바뀌었나

윤학배 | 기사입력 2023/11/15 [06:01]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 이름이 바뀌었나

윤학배 | 입력 : 2023/11/15 [06:01]

요즘 밖에 나가면 이제 겨우 11월 중순인데 풍경은 한 겨울이다. 다들 패딩에 모자에 장갑을 낀 모습이니 눈과 얼음만 없을 뿐이지 벌써 한 1월 쯤 되어 보인다. 한편으로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걱정을 벌써 하게 된다. 

 

당연히 겨울에는 눈과 얼음이 생각나고 눈과 얼음하면 남극, 북극이 떠 올려 진다. 그런데 사실 북극은 땅은 한 뼘도 없이 바다가 꽁꽁 얼어서 육지처럼 보일 뿐이지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이기에 북극 사진을 보면 매년 계절에 따라 그 크기나 모습이 변한다. 

 

반면 남극은 우리 한반도의 70배정도 되는 엄청나게 큰 대륙위에 2km 이상 되는 높이의 빙하가 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빙하는 바로 그린란드 Greenland 빙하다. 겉모습과는 달리 ‘녹색의 땅’이라는 의미의 그린란드는 우리 한반도의 10배 정도 되는 엄청난 면적의 섬인데 비해 인구는 약 5만명 정도이다. 

 

참고로 그린란드는 섬의 기준이 되기에 지구상 가장 큰 섬이 바로 그린란드이고 호주는 가장 작은 대륙인 셈이다. 그리고 유럽 북대서양 한가운데 영국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아이슬랜드이다. 아이슬랜드는 ‘얼음의 땅’이라는 의미로 면적은 우리 남한 면적과 비슷하고 인구는 40만명 정도이다. 

 

그런데 이름을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빙하로 뒤덮인 그린란드는 녹색의 땅이 되었고 인구도 많고 녹지도 많은 아이슬랜드는 얼음의 땅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아이슬랜드나 그린랜드 모두 북유럽의 풍운아였던 바이킹이 발견한 땅이다. 바이킹들은 회유하는 물고기 대구를 쫒아가다가 아이슬랜드를 발견하고 이어 그린랜드를 발견한 후에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지역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 시기가 바로 1,000년 경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보다도 500년 먼저 신대륙에 발을 디딘 최초의 구대륙 사람들인 것이다. 이것은 고고학적,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는데 이들 바이킹의 유적지가 바로 캐나다에 있는 빈랜드Vinland라는 곳이다. 

 

여하튼 바이킹들이 874년 처음 아이슬랜드에 발을 디디고 보니 날씨도 괜찮고 농사지을 땅도 있는 등 살만한 곳이었기에 너무 많은 이주민이 올 것을 염려하여 살기 어려운 땅이라는 의미로 얼음의 땅 아이슬랜드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린란드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정말 정착하기에 쉽지 않은 동토의 땅이었기에 가급적 많은 이주민이 오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그린란드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시각에서 보면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의 이름이 바뀐 듯이 보이는 것이다. 

 

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고민 끝에 나온 두 나라의 이름이 아닐까 한다. 또 한편으로는 바이킹들이 유럽국가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약탈과 인질 등 못된 짓을 많이 하였지만 그 험한 유럽의 북해를 건너 페로제도Faroe Island, 아이슬랜드, 그린란드를 발견하고 마침내는 신대륙에 까지 도달한 그들의 조선기술과 항해술 그리고 바다를 향한 열정과 도전 정신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시대에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취하고 선박들이 해안가를 따라 항해하는 연안항해나 목측항해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눈 앞의 바다를 넘어 또 다른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던 바이킹들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부러워진다. 

 

바이킹이란 말은 계곡 비크Vik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들이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아이슬랜들의 수도 ‘레이캬비크’이다. 바이킹들이 갇혀있던 척박한 계곡을 넘어 신세계로 열린 바다로 나아감으로써 세계 역사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쓰여졌다. 바이킹들에게 바다는 장애물이나 단절이 아니라 세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였다. 겨울의 문턱에서 이름이 바뀐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세계로 열린 바다로 나아가라고 말이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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