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홍사라 | 기사입력 2023/12/04 [09:57]

[홍사라의 풍류가도]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홍사라 | 입력 : 2023/12/04 [09:57]

  © 홍사라라


며칠 전에 지방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다. 3-4-3의 큰 비행기였다. 나는 아직도 촌스럽게 비행기의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창가 자리로 미리 좌석을 배정해두고 일찌감치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금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기차나 비행기 같은 운행시간이 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때는 늘 드는 생각이 있다.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제발 담배 냄새나 발 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이거나, 시끄럽게 전화통화를 하는 어른이거나, 가는 내내 울고 떼를 쓰는 아이가 아니기를 하는 바람.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대부분은 조용히 목적지까지 가고 싶을 테니까. 그날도 그런 바람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방에서의 여정이 좀 피곤했고, 늦은 밤 비행기라 잠이라도 자면서 올라가고 싶었던 터였다. 

 

저 멀리서 한 가족이 걸어오는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내 자리 근처에 앉을 것 같은 묘한 촉이랄까. 그 가족이 내 근처까지 왔을 때 나는 속으로‘ 아…. 제발 날 스쳐 지나가라~ 지나가라~’ 주문을 외듯 마음속으로 빌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내가 있는 열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가족 중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짐을 위 선반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드는 솔직한 마음은 ‘망했다.’ 였다.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두 어른 말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아이가 두 명, 손잡고 있는 아이가 두 명, 총 네 명의 아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나이도 많이 어려 보이고 조용히 김포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아. 결국, 내 바로 옆자리에는 이제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게 어린 여자아이가 앉았고, 그 옆에는 젊은 엄마가 내 옆자리 아이보다도 더 어린 2~3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를 안고 앉았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그 옆에는 엄마가 안고 있는 아이와 쌍둥이처럼 보이는 아이를 아빠가 안고 있었고, 그 옆좌석에는 4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아, 이번 비행은 완전히 망했구나.’ 싶었다. 시간은 저녁 9시쯤이었으니 어린아이들은 잘 시간이었다.

 

비행을 하는 내내 잘 시간이 지난 아이들은 아마도 잠투정을 할 것이고, 울고 짜증 내는 소리가 그치지 않겠구나 하는 건 내가 촉이 좋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조용히 책이나 읽다가 졸리면 자면서 가려고 했던 나의 밤비행은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시작되었다.

 

우려했던 대로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안겨 있는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비행기의 소음과 압력, 밀려드는 졸음과 집이 아닌 불편함 때문에 자지러지듯 울기 시작했다. 좌석에 앉아있는 조금 큰 아이들은 처음에는 제법 의젓하게 앉아있나 싶더니 동생들처럼 엄마·아빠의 관심을 갖고 싶어서 부모 품에 안긴 동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부모는 정신이 없으니 보지 못한 것 같았는데, 엄마·아빠 몰래 동생 발을 꼬집고 때리고 발로 차고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겨 있는 어린아이가 빽빽 울기 시작하면 엄마한테 저지를 당하고는 괴롭히기를 그만두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시끄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넷, 어른은 둘이니 나라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어쩔 줄 몰랐을 상황이었다.

 

그러다 대여섯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부모로부터 원하는 관심을 어떻게 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소리를 지르며 장난감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로보카 폴리 장난감 차였는데 한 개씩 차례로 바닥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던지는 방향이 정확히 내 발 방향이라 여러 종류의 장난감들이 발 쪽에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라면 이쯤 되면 아마도 말은 안 해도 엄청난 짜증이 섞인 표정, 눈빛과 함께 그 가족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몇 번 비슷한 경우가 전에도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지나치게 떠든다거나 자꾸 내 좌석을 발로 차거나 해서 불편해져 쳐다보면, 대부분은 흘끔 쳐다보다가 몇 번 주의를 시키고는 그냥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면 시끄러움과 불편함에 지친 나는 가는 내내 화가 나 있거나 체념하거나 했었다. 아니면 내가 먼저 자리를 피하기도 했고. 그런데 여기는 비행기 안이니 자리를 바꿀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이제까지의 내 경험과 좀 달라 보였다.

 

소리를 지르면서 장난감을 던지던 아이에게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00야, 장난감 그렇게 던지는 거 아니야. 그렇게 장난감을 던지면 옆에 있는 사람이 맞을 수도 있고, 얼마나 불편하시겠어. 많이 힘들지. 지금까지 잘 참았어. 조금만 더 참고 얼른 집에 가자. 할 수 있지?” 그러더니 나에게 죄송하다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잠시 그 행동을 멈췄다. 가지고 싶었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러다 몇 분이 안 되어 다시 행동을 반복하면 엄마는 장난감을 던지던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아까 했던 말을 부드러운 어조로 반복했다. 그리고 이번엔 “죄송합니다~ 해야 하는 거야. 직접 사과드려.”라는 말을 추가했다. 아이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보였지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네 명의 아이 모두 엄마, 아빠에게 떼를 쓰고 있었는데 그 부모는 큰 소리 한번을 내지 않았다. 그제야 자세히 보니 부모의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건지. 순간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덕분에 나도 가는 내내 아이가 던지는 물건을 주워주고 웃으며 달래주고 했다.

 

그 부모는 비행 내내 그렇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들을 말로 이해시키고 달래가며 무사히 비행을 마쳤다. 중간중간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건넨 것을 물론이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시끄러운 아이가 넷이나 있었던 이번 비행에서는 화가 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았다. 나도 그랬고, 다들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으니까. 그 부모의 태도가 너무 반듯하고 타당했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겉으로야 평정심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부부도 그 속이야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며칠 뒤, 이사 때문에 책상을 쓸 수 없어 근처 카페에 나와 일을 하게 되었다. 3~4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에 조부모까지 어른만 4명인 가족을 만났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며 책상을 쿵쿵 치고 소리를 지르고 카페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누가 봐도 타인에게 폐가 되는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 네 명의 어른은 예쁘다며 아무도 저지를 하지 않는다.

 

아이야 예의범절이라는 게 아직 뭔지 모를 수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다 큰 어른들이 그걸 바라보며 칭찬하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며칠 전 만났던 부부가 떠올라 비교가 되었다.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인데 교육하는 방식이 참 다르구나. 지금 여기서 만난 아이 같은 교육을 받는 아이가 많은 세상이라면,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세상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졌다. 

 

요즘은 집안에 아이가 귀하다보니 아이들이 과한 우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자식이니 얼마나 소중할까 싶지만, 잘못을 잘못으로 인지하고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야 더 현명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3살이면 사회를 위한, 주변을 위한 배려심이 무언지 인지하기 시작하고 7살이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 잘못한 일에 직접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와 동시에 그 마음을 이해해주며 칭찬도 해주던, 며칠 전 비행에서 만났던 그 부모와 오늘 카페에서 만난 부모의 교육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리고 나는 비행에서 만났던 그 부모의 교육방식이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위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내 아이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이겠지만, 그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 아이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 꼭 필요한 사회를 위한 배려심을 알려주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나부터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말고.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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