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봄이다. 벌써 개나리에 산수유에 매화까지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꽃샘추위가 한번 씩 심술을 부려도 따뜻해지는 햇볕에 고개 들어 보면 봄은 어느덧 나보다 한 걸음 앞에 와 있다.
이른 봄은 어디론가 여행하기에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그중에서도 봄은 이태리 여행하기 딱 좋은 때이다. 이태리의 여름 햇살은 너무 따갑고 겨울에 북부 이태리를 여행하기에는 눈과 바람 등 날씨가 만만치 않다. 이태리에는 가봐야 할 곳이 참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폼페이 등등 일일이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유명한 역사와 문화도시보다 먼저 첫째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아말피이다. 아말피 (Amalfi)는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70km정도 해안 절벽 길을 따라서 지중해 바다와 절벽을 감상하다 가면 불현듯이 나타나는 작은 바다 도시이다. 차를 몰고 절벽을 돌면 갑자기 그림처럼 나타나는 정말 그림 같은 도시이다.
그런데 이 아말피가 한때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와 더불어 지중해를 주름잡던 이태리 4대 해양공국(海洋公國)의 하나였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태리 해군을 상징하는 해군기(海軍旗)에는 아말피를 포함한 이들 4대 해양공국의 문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아말피를 방문해 보면 과거 융성했던 해양공국 모습은 간곳이 없고 그저 유럽인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최애 관광지이자 UNESCO에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이다.
지금의 아말피를 보면 인구 6천명도 안 되는 이렇게 작은 도시가 어떻게 한때 지중해를 호령하던 해양 강국이 되었을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12세기 전성기 당시에는 인구도 수만 명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아말피 해상법이 전 지중해에서 표준법으로 통용되었다. 또한 중국의 나침반을 유럽으로 전파한 것도 바로 이들 아말피 상인과 선원들이었다. 실제로 선박항해용 나침반이 제작되어 항해에 활용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아말피였다.
그러고 보면 아말피는 선박과 항해역사에 많은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러나 1343년 지진해일로 아말피는 초토화되어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전성기 당시 아말피는 강력한 해군력과 조선기술 그리고 뛰어난 선원들과 그들의 항해술로 작지만 부유하고 강한 ‘강소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말피라는 도시가 구조적으로 가지는 산비탈이라는 지형적인 한계와 작은 면적, 그리고 적은 인구 등 내재적 취약성과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진해일이라는 자연 재해속에서 큰 타격을 입은 뒤 다시 재기하기에는 그 규모나 인구 등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아말피는 이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절경을 지닌 휴양도시로 옛 영화는 몇몇 유적지에서나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중 하나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예수님의 12사도중 하나인 성 안드레아의 유해를 모신 것으로 유명한 아말피 산자락 비탈에 있는 ‘성 안드레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ndrea)이다. 이 성당은 9세기경 건축된 것으로 아말피의 수호성당(Duomo di Amalfi)이기도 하다.
지금도 아말피 하면, 절벽에서 바라보던 해변과 바닷가 작은 카페의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가 떠오른다. 다행히? 남한산성에 ‘아말피’라는 이름을 가진 갤러리를 겸하는 아주 작은 카페에 커다란 아말피 도시와 해안 사진이 있어서 아말피 해안을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며 추억에 젖게 한다.
이 꿈같은 봄이 오는 주말에는 해양공국이던 이태리 아말피를 추억하며 강릉 안목해변이나 남한산성 아말피를 찾아 짙은 커피한잔으로 바다와 커피 향에 흠뻑 젖어 보고 싶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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