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북부 이태리를 여행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이다. 피사는 중심도시인 피렌체와 더불어 토스카나 지방을 대표하는 관광도시이자 전원도시이다. 토스카나 지방은 알프스 산맥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에 날씨도 좋아서 키안티(Chianti) 와인으로 대표되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피사하면 기울어진 피사탑(Torre di Pisa)울 먼저 떠 올린다.
이 피사탑은 원래 바로 옆에 있는 피사 성당의 부속건물인 종탑으로 세워졌는데 이제는 피사성당보다 더 유명하게 되어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더욱이 이 피사의 사탑은 피사가 고향이던 갈릴레이가 낙하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세를 더하게 되었다. 바로 이 피사성당과 피사의 사탑은 해양 도시국가였던 피사가 해양공국으로 지중해 해상무역을 한창 주름잡던 시기인 12세기에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바다도 없는 피사가 어떻게 해양공국이라니! 실제로 중세이후 피사는 베네치아. 제노바, 아말피와 더불어 지중해 상권을 쥐락펴락하던 이태리의 4대 해양공국의 하나였다. 의아한 것은 지금으로 보면 어떻게 내륙도시인 피사가 해양공국이 되었을까? 그 답은 바로 피사를 관통하는 아르노 Arno강이다.
지금이야 피사는 해안에서 10km이상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바다로부터 3~4km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아르노강을 따라 피사까지 선박이 운항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쟁관계이던 해양공국 제노바와 피렌체에 의해 점령을 당하면서 피사가 더 이상 해양 도시로 재기하지 못하도록 항구를 매립해 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피사는 점점 바다에서 멀어져 이제는 항구로서는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피사가 바다로 가는 길이자 활로인 강이 막히자 피사의 운명도 기울어 진 것이다.
또한 그 유명한 피사 사탑의 원인도 바로 이 아르노 강에 있다. 하필 피사 탑의 지반이 아르노 강이 인접한 곳이라 연약지반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어질 때부터 피사탑은 그만 기울어지는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이 아르노 강은 바닷가 해안도시가 아닌 피사를 해상공국으로 가능케 한 피사와 피사 시민들의 생명줄 이었다. 아르노강이 있었기에 내륙도시 피사가 지중해를 주름잡는 해양공국이 될 수 있었고 아르노강 때문에 피사탑은 기울어져 지금의 피사 사탑이 되었던 것이다.
파사와 인접하여 있으며 이태리 4대 해양 공국의 하나인 제노바는 동쪽의 베네치아와 더불어 리비에라 해안이라 불리는 이태리 서쪽해안에서 쌍벽을 이루는 라이벌 해양공국이었다. 제노바는 바다의 도시답게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과거의 찬란한 해양 전통을 이어받아 아직도 이태리의 가장 크고 활발한 항만이자 제 1의 해양도시이다. 이태리 지중해 크루즈와 스위스의 세계 1위 글로벌 선사인 MSC가 모항으로 삼고 있으며 지중해 크루즈의 중심 항만으로 아직도 해양도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피사의 아르노강의 운명을 보면 우리나라 강들의 현재 모습이 떠 올려 진다. 강에서 바다로 가는 흐름이 막히자 피사의 생명 줄이 막히듯이 말이다. 다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4대 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영산강이다. 이중 한강만 역설적으로 북한이란 존재 때문에 하구를 막는 하구 둑이 없고 나머지 강들은 바다와 만나는 하구가 모두 하구 둑으로 막혀있다. 강과 바다가 상호 작용을 하는 하구가 둑으로 가로 막혀 있으니 선박운항과 물류는 말할 것도 없고 생태계와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하구 둑을 지날 때마다 숨이 막히듯 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언젠가는 우리의 강들에게 하구를 돌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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