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민들레꽃 갯메꽃 개망초꽃 오랑캐꽃 복수초꽃 그들은 벌 나비와 사랑 나눌 참한 옷을 입었는데 그 옷에는 바느질 흔적이 없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도 그런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옷 한 벌 지어 입고 살자.
# ‘새발뜨기’로 꿰맨 바짓단을 다림질하고 상의와 맞추어 옷장에 걸었다. 초여름에 입을 옷을 꺼내 옷장을 정리하면서 남편의 양복과 바지들을 살피니, 양복 윗단추 실밥이 늘어진 것도 눈에 띄고 특히 처음 구입할 때 ‘공그르기’로 바짓단을 꿰맸던 부분들이 군데군데 실밥이 터졌거나 늘어진 것들도 있었다. 양복의 윗단추를 다시 단단하게 꿰매고, 바짓단의 실밥이 늘어졌거나 조금 뜯어진 바지들을 꺼내어 ‘새발뜨기’로 단단하게 수선해서 옷장에 걸어 두었다. 옷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남편의 옷장인데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모습의 옷들이 도열 해 있었다.
특정한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사회화(socialization) 과정을 통해서 학습된다. 인간은 태어나서 세 단계를 거쳐 옷 입는 방식이 학습된다고 보았다. 첫째, 놀이 전(pre-play) 단계에서는 어머니가 골라 준 옷을 입는다. 둘째, 놀이(play) 단계는 관습에 따라 옷을 입는다. 셋째, 게임(game) 단계에서는 동료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데, 그 옷은 집단 성원으로서 소속감과 개인으로서의 정체감을 높여준다. 그리고 성숙한 성인이 되면 심미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가치를 더욱 고려하게 되며,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옷을 선택하게 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최소한 필요한 세 가지는 ‘의식주(衣食住)’인데, 그중 “의(衣)는 고대부터 나뭇잎, 동물 가죽 등으로 몸을 보호하는 옷을 만들어 입을 만큼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옷은 몸을 보호하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Stone(1962)은 외모는 그 사람의 정체성, 가치, 기분, 태도 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외모 중에서 옷은 선택을 통해 비교적 융통성 있게 자신의 특성을 전달하기 쉽다. 옷은 비음성적 의사소통의 기능을 가진다. 예컨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유니폼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충족시킨다. 옷은 심리적 상태와도 연결되어 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자아를 충족시키고, 신체적 자아를 확장 시켜 심리적 만족과 안정감을 얻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통해 타인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자신을 평가하고, 사회적 계층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민들레꽃 갯메꽃 개망초꽃 오랑캐꽃 복수초꽃/그들은 벌 나비와 사랑 나눌 참한 옷을 입었는데‘라는 시인의 전언처럼 진화심리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옷은 배우자로 삼고 싶은 사람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에 비해 인간은 때와 장소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고도 개성 있는 옷들을 착용하게 되면서 옷장 가득 옷들이 채워지게 된 것이리라. 옷장에 걸린 옷들을 바라보면서 그 옷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모두 제 역할을 해내느라 옷의 실밥도 늘어지고, 솔기도 뜯어지고, 세상의 먼지와 얼룩도 묻혀 들였기에 “바느질 흔적이 없”는 단 한 벌의 옷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나 보다. 적어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만큼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는 현란하고 바느질 자국 가득한 옷을 벗어 던지고, “민들레꽃 갯메꽃 개망초꽃 오랑캐꽃 복수초꽃”들처럼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마음 옷을 입고 살고 싶다는 노 시인의 전언이 맑은 시냇물 소리로 흘러든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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