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허기 / 천영희

서대선 | 기사입력 2024/06/17 [09:35]

[이 아침의 시] 허기 / 천영희

서대선 | 입력 : 2024/06/17 [09:35]

허기

 

매미 울음소리 잦아드는 여름 끝자락

마음의 허기 채우려고 책장을 넘기며

돋보기 너머 활자를 불러들인다

 

푸르른 창공을 차고 놀던 독수리

숲속을 자맥질하며 낚아챈 먹이로

허기를 채우고

 

갓난아기는 젖꼭지 입에 물고

엄마와 눈 맞춤하며 허기를 채운다

 

인간은 욕망에 허기져 울고

산속 부엉이는 사랑에 허기져 운다

 

오늘도 떠내려가는 추억을 

뜰채로 건져 올리며 허기를 채워 본다

 

# “마음의 허기”가 크셨나 보다. 딸아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분께서 보내주신 수필집   속, 먼저 세상을 뜬 아내 이야기에서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하고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꽃들이 떠난 목련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초여름의 바람이 스쳐 간다. 고된 시집살이와 가부장적인 장남의 아내로 말없이 순종했던 아내가 생의 말년에 이상 식욕과 이상행동을 보였다던 사연의 행간을 천천히 지나며, 조신(操身)하고 헌신적이었던 한 여성의 “마음의 허기”를 가늠해 보았다.

 

“마음의 허기”의 원인은 크게 우울증, 욕구불만, 스트레스 등이며, 이 증상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려는 욕구를 과식이나 폭식, 과도한 소비와 같은 행동으로 나타낸다. 이 중 가장 손쉽게 빠질 수 있는 것이 음식인데, 다른 것들보다 죄책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음식은 제도적 범위 안에서 허용된 ‘욕구 충족용 쾌락’ 이라 할 수 있다. 먹는 즐거움이 마음의 허기, 외로움, 스트레스 등을 잠시 잊게 해줄 수는 있지만, 폭식으로 얻는 ‘빠른 쾌락’은 마약처럼 내성이 생긴다. 

 

우리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는 몸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면 ‘배고픔’이라는 신호를 보내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열량이 부족하지 않을 때도 뇌는 배고픔의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가짜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고프다고 느낄 때 자신의 몸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진짜 배고픔은 배고픈 느낌이 서서히 커지면서 속이 쓰리거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살짝 어지럽기도 하고 가벼운 두통, 기분이 처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특정 음식보다는 어떤 음식이라도 상관없다고 느끼고 음식을 먹은 후엔 만족과 행복감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처럼 달거나 매운 마라탕처럼 특정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면 가짜 배고픔이다. 이런 경우는 배가 불러도 계속 먹으려 하고 먹은 뒤에는 행복감보다 공허함과 자책감이 밀려온다. 

 

가짜 배고픔은 스트레스나 과로, 우울증, 낮은 자존감 등의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울적해지면 체내 세로토닌(serotonin)의 수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세로토닌은 교감신경에 작용해 혈압과 호흡 횟수를 늘려 우리 몸에 활기를 주고 기억과 학습능력, 또는 소화나 장의 운동에도 영향을 준다. 세로토닌은 트립토판(tryptophan)이라는 아미노산을 통해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트립토판이 뇌에 도달하려면 인슐린의 도움이 필요해 단 음식을 찾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과다분비된다. 코르티솔은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leptin)의 분비를 감소시켜 식욕을 돋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시작하면, 음식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 

 

“마음의 허기”는 오랫동안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했고, 슬플 때 슬픈 내색을 하지 못했고, 화나는 일에도 꾹꾹 참기만 했던 억압(repression)의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를 사용함으로써, 나중에는 일반적인 감정들 까지도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신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전략으로 폭식이나 과소비 같은 부정적인 행동 대신에 “책장을 넘기며” 고전이나 시, 소설, 산문 속에서 “활자를 불러들여” “허기”를 채운다. 때론 “매미 울음소리 잦아드는 여름” 속으로 들어가 자연으로 마음을 채우고, “갓난아기”가 “젖꼭지 입에 물고/엄마와 눈 맞춤하며 허기를 채”우 듯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또 어떤 때는 “떠내려가는 추억을/뜰채로 건져 올”려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본다고 전언한다. 먹어도 먹어도 마음이 고프다면, 시인의 전언을 참조 삼아 자신의 “마음의 허기”를 벗어나는 건전한 전략을 찾아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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