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골프의 페어웨이와 러프가 배의 항로야!

윤학배 | 기사입력 2024/07/09 [15:18]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골프의 페어웨이와 러프가 배의 항로야!

윤학배 | 입력 : 2024/07/09 [15:18]

  © 문화저널21 DB


우리나라 사람들의 골프사랑은 참으로 대단하다. 골프장에 하얀 눈이 덮인 추운 겨울이면 공이 안보일새라 붉은, 노랑 등 형형색색의 공으로 눈을 치워가며 골프를 즐기고 반대로 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라이트를 켜놓고 한밤중에도 야간 골프를 즐기니 말이다. 특히 밤에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조명등을 켜고 경기를 하듯이 골프장에도 조명탑을 설치하여 야간 골프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나라만의 이색적이고 독특한 골프 문화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즐기는 골퍼(golfer)의 수는 통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600만 명 이상은 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이 골프인구라는 의미는 한번이라도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해 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다 실내 스크린 등에서 골프를 하는 실내골퍼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훨씬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600만 명의 골퍼(golfer)들이 1년에 평균 9번 정도 실제 라운딩을 한다고 하니 연간 골프장을 찾는 골퍼의 수는 5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규모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연간 관람객 수가 1천만 명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숫자인 것이다. 

 

더욱이 골프인구는 프로 야구처럼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골프장에 가서 직접 골프를 하는 인구가 5천만 명을 넘는다는 것이고 보면 골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고 대중화?된 스포츠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골프가 우리 바다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금년이 152회째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대회이자 가장 권위 있는 대회가 바로 영국의 ‘The Open’이다. 이 대회는 작년에는 골프의 발상지이자 대표적 링스(links) 코스인 세인트 앤드류스(Saint Andrews) 골프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링스’란 말 자체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영국의 디 오픈(The Open) 골프대회는 영국내 8개 골프장에서 돌아가며 개최되는데 이 8개 코스는 전통적으로 모두 링스코스로 5개는 스코틀랜드에 있고 나머지 3개는 잉글랜드에 있다. 특히 이중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은 골프의 발상지로 전통과 권위가 인정되어 5년에 한번은 반드시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골프의 시작이 바로 바닷가이다.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의 항공사진을 보면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반도인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링스 코스에는 연못이나 호수 같은 물(water) 해저드가 없고 키가 큰 나무도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골프장의 난이도를 ‘히스(heath)’라 불리는 러프의 무성한 풀과 불규칙한 그린으로 조절하게 된다. 참고로 영국의 관문인 히스로(Heathrow) 공항도 공항 개발 이전에 히스라는 풀이 무성했던 지역이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00링스코스라는 이름을 가진 골프장이 많이 있기는 하나 이름과는 달리 영국의 전형적인 링스코스와는 특징이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골프에서 스코어를 잘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어웨이(fairway)에 볼을 보내야 하고 반대로 러프(rough)에 들어가면 아주 힘들고 애를 먹게 된다. 그러기에 골프 고수들은 페어웨이로 볼을 보내기 위해 힘을 뺀 부드러운 스윙을 하지만 초심자들은 힘만 들어가고 그 결과는 바로 러프나 해저드 직행이다. 

 

그런데 페어웨이와 러프라는 용어가 의외로 바다에서 유래하고 있다. 골프의 발상지가 바닷가여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실제로 페어웨이는 바다에서 배가 아무 장애물 없이 순항(順航)하는 항로를 뜻하는 선박 항해용어이다. 반대로 러프는 황천(荒天, rough sea)이라 하여 풍랑이 심해서 항해하기 어려운 험한 항로 즉 난항(難航)을 의미한다. 

 

따라서 페어웨이에 간 볼은 순항을 하는 셈이니 파나 운이 좋으면 버디를 하기도 하지만 러프로 간 볼은 난항을 겪어 잘못하면 소위 ‘양파’를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러프로 볼이 가게 되면 풍랑이 심한 ‘rough sea’를 항해하는 선박의 선장처럼 신중하고 계획성 있게 플레이해야 한다. 바로 풍랑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항해할 때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골프장은 바다이며 우리 골퍼들은 배의 선장이자 항해사인 셈이다 

 

골프의 발상지가 바닷가이고 그 용어가 바다에서 유래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골프를 잘 하거나 인기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 섬나라이거나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인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남아공 등 세계 골프 계를 주름잡는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이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금으로 부터 120여 년 전인 1900년경 원산항 인근 바닷가였다. 당시 조선 왕실에서 부산, 원산, 제물포 등 3개 항구를 개항한 이후에 국제 세관업무를 위해 영국인 대여섯 명을 조선으로 초빙하였는데 골프를 좋아하던 이 영국인들이 원산항 인근에 6홀 규모의 작은 골프코스를 조성하여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물론 당시 필요한 골프채나 골프공 등을 조선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청나라에서 들여왔다. 뜨거운 뙤약볕 밑에서 땀 뻘뻘 흘리며 골프를 하던 파란 눈의 영국인들을 보고 원산항 인근에 살던 조선인들이 뭐라 말 했을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바다 없이 골프도 없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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