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안에서
산에 오르다 오르다 숨이 차거든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가자. 하늘에 매단 구름 바람 불어 흔들리거든 나무에 안겨 쉬었다 가자.
벚나무를 안으면 마음속은 어느새 벚꽃동산, 참나무를 안으면 몸속엔 주렁주렁 도토리가 열리고, 소나무를 안으면 관솔들이 우우우 일어나 제 몸 태워 캄캄한 길 밝히니
정녕 나무는 내가 안은 게 아니라 나무가 나를 제 몸같이 안아주나니, 산에 오르다 숨이 차거든 나무에 기대어 나무와 함께 나무 안에서 나무와 하나 되어 쉬었다 가자.
# ‘걱정하지 마. 뿌리를 잘 다독여 반드시 살릴게.’ 서재 곁 둔덕에서 십여 년 이상 붉은 손을 흔들어 주던 적단풍(赤丹楓) 나무가 500mm의 폭설에 허리가 꺾인 채 쓰러졌다. 비탈진 둔덕에 내린 뿌리가 수분을 많이 머금은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꺾인 둥치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다. 서재 뒤 둔덕은 백년도 넘은 참나무와 굴참나무가 대부분이어서 꽃나무는 자라지 못했기에 둔덕 아래쪽 비탈에 붉은 단풍나무를 심자고 했다. 온통 초록인 둔덕에서 환하게 붉은 손을 흔들며 반겨주어, 서재 쪽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기운이 솟았다. 십여 년을 그렇게 위로받고 기운을 얻었었는데, 생전 처음 만난 폭설에 그만 적단풍 나무의 척추 노릇을 하던 굵은 둥치가 꺾였다. 꺾인 둥치와 가지를 잘라내니 서재 옆 둔덕이 휑하다.꽁꽁 언 눈가루가 붙어있는 단풍잎에 손을 얹고, 봄이 와 땅이 녹으면 뿌리는 흙으로 돋우고 단단하게 다져 새 가지가 나오도록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나무는 지상에서 풍경을 이루는데 약 27%를 점유하고 있다. 작은 집단으로 자라면 작은 숲(grove, copses)이라 불리고, 거대한 면적에 걸쳐 고밀도로 자라면 산림(forest)으로 불린다. 나무는 열대지방에서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약 8만 여종 이상의 나무들이 분포되어 있다. 나무가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몇 해 전 태풍이 지날 때, 집 둔덕에 서있던 백년도 넘는 참나무와 굴참나무가 무시무시한 소리로 들이닥친 태풍을 제 몸으로 감싸안고 태풍의 속도를 늦춰 주어 집과 텃밭은 무탈했다. 지난여름 하루에 100mm가 넘는 폭우가 뒷산 골짜기를 휩쓸며 쏟아질 때도, 오십 년도 넘은 산벚나무와 밤나무와 단풍나무가 어머니 나무처럼 흙덩어리를 움켜쥐고 물을 다스려 주어 산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나무는 거대한 산소공장이기에 늘 싱그럽다. 잘 보전하고 가꾸는 숲 1ha는 한 사람이 21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해 준다고 한다. 나무는 인체에 해로운 대기 중의 먼지, 아황산가스, 질소화합물 등을 잎의 기공을 통해 흡수하거나 잎 표면에 흡착시켜 공기를 정화 시킨다. 1ha의 침엽수림은 1년 동안 약 30-40 톤의 먼지를 걸러내고, 활엽수는 68톤의 먼지를 걸러낸다고 한다. 그뿐이랴, 나무는 온갖 미생물들과 새와 작은 짐승들과도 공생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을 깨우쳐 준다.
“벚나무를 안으면/마음은 어느새 벚꽃동산,/참나무를 안으면 /몸속엔 주렁주렁 도토리가 열리고,”라는 구절에 이르면 시인이 얼마나 나무를 사랑했는지 알겠다. 사월에 피는 산벚나무꽃은 수채화처럼 은은하다. 산벚나무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를 볼 때면, 나도 한 마리 벌이 되고, 나비가 되어 산벚꽃 사이를 날고 있는 듯 황홀한 멀미가 오곤 했다. 가을이 와서 툭, 투둑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를 들으려 뒷산 참나무를 끌어안으면, “정녕 나무는 내가 안은 게 아니라/나무가 나를 제 몸같이 안아주”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했다. 때로 마음도 갈 곳을 잃어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것 같은 날, 시인처럼 산에 올라 오래된 “소나무”에 안겨보자. “나무에 기대어/나무와 함께/나무 안에서/나무와 하나 되”면, “관솔들이 우우우 일어나/제 몸 태워 캄캄한 길 밝히”리니...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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