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서대선 | 기사입력 2025/01/20 [05:02]

[이 아침의 시]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서대선 | 입력 : 2025/01/20 [05:02]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 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제게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빛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음으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세상에 어려움이 

한 두 가지랴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 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라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고라니가 지나가나.’ 새벽 다섯 시, 창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머리맡 전등을 켜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소리였다. 얼른 두터운 겉옷을 걸치고 마루에 불을 켜고 현관문을 열었다. 하얀 눈을 덮어쓴 채 동생이 현관 앞과 데크에 내리는 눈을 쓸고 있었다. 얼마 전 500mm의 눈 폭탄이 쏟아져 삼사일 동안 마당에도 내려서지 못한 채 집에 갇혔을 때도, 동생이 올라와 집주변과 서재로 통하는 길을 내주었는데, 새벽에 내리는 눈을 본 동생이 나이 든 누나가 아침에 문 열고 나오다 행여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컴컴한 새벽에 올라와 눈을 쓸고 있던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송풍기로 눈을 불어 한쪽으로 치울 수도 있었지만, 새벽잠을 깨울까 봐 가만가만 싸리비로 눈을 치워주며, 낙상(落傷)을 조심하라던 동생의 “환한 얼굴”이 “밝은 하루를 열어주”고 있었다.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서로서로가/돕고 산다면/보살피고 위로하고/의지하고 산다면/오늘 하루가/왜 괴로우랴”던 시인의 말처럼, ‘다정함’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들어 있다. 진화학자에 의하면 ‘다정함이야말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생명체들이 다 함께 잘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보았다.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와 연구원인 버네사 우즈(Vanessa Woods)는 ‘친화력은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 진화했다’고 보았다. 호모사피엔스가 마지막 인류로 살아남은 이유는 화살과 칼 같은 도구의 이용과 사회적 지능의 발달로 의사소통 능력과 친화력을 촉진 시키는 ‘다정함’을 통해 협력하고, 연대 함으로써 오늘날 지구에서 막강한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보았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물계의 수많은 사례를 이용하였다. 예컨대, 개의 경우는 사람에 의해 길들여졌다기보다는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 수실로/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어둠에서 밝아오는/빛의 대문을 열어젖혀/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불쌍한 사람을 돕고/괴로운 이가 있으면/괴로움을 함께 나누고/앓는 이가 있으면/찾아가 간호해 주는”,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건너보고 마주보고/바라보고 산다면/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또 얼만 아름다우랴”. 오늘은 어제 세상을 뜬 사람이 그리도 소원하던 내일이 아니던가. “아침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안다면, “환한 얼굴로”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빛같이 신선하고/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누구에게나 다정한/누구에게나/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내가 있음으로/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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