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공직자가 민간 기업으로 취업할 시에는 정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특히 기업 등의 비위행위를 심사하고 관리‧감독하는 기관의 공직자라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내법상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 있는 기관에 취업하려면 윤리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공직자윤리법에 구멍이 났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무 연관성을 지닌 공직자라도 연 매출 100억 원 이하인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 취업심사나 취업제한에서 자유롭다는 해석 때문이다. 이들은 취업심사를 떠나 신고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구멍난 ‘공직자윤리법’ 의료법 위반 관리감독 책임자 의료전문 법무법인(로펌)에 취업
‘창에서 방패’로 이직했지만 신고과정 생략 인사혁신처 “(로펌)매출 100억 미만이면 심사없어”
최근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를 맡아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는 인사혁신처로부터 정식으로 재취업 허가를 받은 경우다. 외부로의 심사부터 취업까지 모든 사항이 드러난 경우로 사회적 논란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 2023년 6월 보건의료정책관이 의료계 로펌으로 이직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3년 S법무법인은 A 전 보건의료정책관을 헬스케어 전문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S법무법인은 의료,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업계에서 잘 알려진 의료계 전문 로펌이다.
A 전 보건의료정책관이 근무하던 보건의료정책과는 의료법 위반(대리수술, 진료기록부 거짓작성 등)에 대해 현장 실사 및 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 보는 부서이기도 하다. A 정책관은 병원을 관리·감독하는 자리에서 곧장 병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A 전 정책관은 정부당국에 이직신고를 하고 심사를 받았을까? 본지가 인사혁신처에서 제공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A 전 정책관은 취업심사를 받지 않았다. 인사혁신처에서는 개인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S 법무법인이 취업심사대상기관에서 제외된 영향으로 판단된다.
공직자윤리법 제33조(취업심사대상기관의 규모 및 범위) 에 따르면, 취업심사대상기관의 규모는 자본금이 10억 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 원 이상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체다. 즉 연 매출 100억이 넘어야 심사 대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1년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따라 로펌도 취업심사 대상이 됐지만, 영향력 행사 가능성 및 업무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 허용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공직자윤리법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사혁신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로펌으로 이직하는 것이 공직자 윤리법에 무조건 어긋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보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취업 심사를 하고 있다. 세세한 조항에 따라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지 확인한다. 기준에 따라 취업 제한이 되거나 불승인, 또는 승인 후 취업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퇴직 3년 이내면 심사 신청을 무조건 해야하지만 법적으로 로펌이 규모가 크더라도 연매출이 100억 원 미만이면 심사없이 취업이 허용된다”고 했다.
국회는 매년 공무원들의 로펌행 지적 “로펌이 정관계 로비 창구로” “로펌행, 업무 관련성도 있고 영향력도 행사” 전 인사혁신처 고위관계자 “로펌 규제 필요…규정 개정 공감”
이같은 문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황정아 의원은 지난해 10월 “로펌들이 단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정관계 로비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로비 방지 규정을 마련하고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제출받은 ‘퇴직공무원 취업 심사 현황(2020년~2024년 7월)’ 자료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 취업 심사를 통과하는 가운데 대통령실·검찰청·국세청·감사원 등 감시 또는 권력기관 퇴직공직자의 심사 통과 비율이 일반 퇴직공직자에 비해 높았다.
용혜인 의원은 “취업 심사 대상기관 3년간 취업 제한이라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퇴직공무원의 취업 허가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무려 9가지에 달하는 예외 허용 요건이 있기 때문”이라며 “업무 관련성이 없고,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인데 현실은 이와 다르다. 최근 논란이 되는 경찰의 로펌행은 업무 관련성도 있고, 영향력도 행사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출신은 퇴직 이후에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엄격하게 취업제한 심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10년, 20년 전에도 반복 지적되어왔다. 고위 공직자의 사기업 취업제한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애 한다는 것인데, 포인트는 ‘업무 연관성’이다. 예컨대 ‘보건복지부=병원’, ‘제약사, 금융감독원=은행, 금융회사’ 등으로 1차원적인 시야가 아닌 공직자가 그 위치에서 어떤 업무를 봤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했지만 이를 명확히 하지는 못했다.
전 인사혁신처 고위관계자는 본지에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로펌의 경우 (매출)규모가 작을 수 있기 때문에 100억 이하라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규제가 필요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관련규정의 개정이 필요한 만큼 언론보도를 통한 제언이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cjk@mhj21.com, 이한수 기자 han@mhj21.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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