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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만 풀꽃
목련처럼 크고 화려한 꽃보다 별꽃이라든지 봄까치꽃이라든지 구슬봉이꽃 같은 쪼그만 꽃에 더 눈길이 간다 겸허하게 허리를 굽혀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꽃 하마터면 밟을 뻔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꽃 앉아서 보듬어주고 싶어도 너무너무 작아서 보듬어줄 수 없고 나비도 차마 앉지 못하고 팔랑팔랑 날갯짓만 하다 가는 꽃 눈으로나마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싶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큰 소리만 듣는’ 시절이지만, 둔덕에는 작은 것들의 몸짓과 소리가 그레고리 챤트처럼 울려 퍼지는 봄날이다. 기후변화 때문일까, 사월을 코앞에 두고 폭설이 쏟아졌다. 깜짝 놀란 새들도, 고라니도, 족제비도, 황망하게 제 발자국을 남겼다. 눈을 치우고, 찾아온 생명들의 구호식품을 곳곳에 놓아주었다. 장화를 신고 둔덕에 올라 눈더미를 헤쳐보았다. 다행이다. 폭설 속에서도 씩씩하게 견디고 있는 복수초를 따스한 눈웃음으로 “보듬어” 주었다. 이파리와 꽃잎이 작고 여린 양지꽃들도 눈의 무게로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눈덩이를 입으로 불어주었다.
이른 봄에는 작은 꽃들이 먼저 핀다. 아마도 생존전략의 측면에서 볼 때, “쪼그만 풀꽃”들이 나중에 오는 커다란 나무의 이파리들과 풀더미와 크고 화려한 꽃들에 밀리거나 묻혀버리지 않으려 먼저 이파리를 내밀고 꽃을 피워 올리는 안쓰러운 몸짓 같아 “더 눈길이 간다”.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큰 소리만 좇는’ 세태에도 자연의 작은 생명들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 뱁새처럼 황새를 흉내 내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어리석은 행동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생 앞에 성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볼일이 있어 산속 집을 나서니, 걷는 힘이 많이 약해진 이웃집 할머니는 아기 유모차를 밀며, 동네 한바퀴를 천천히 돌고 계셨다. 텃밭을 잘 가꾸는 아저씨네 밭에는 마늘 싹이 푸르다. 텃밭이 없는 부녀회장 아주머니는 뒤울안에 넝쿨 호박을 올리고, 조그만 앞마당 한 곁에는 채송화, 분꽃, 천사의 나팔을 돌보고, 화분에 고추, 가지, 파를 심어 일용할 양식에 보태신다. 골목길을 돌며 보니, 벌써 무언가를 심었는지 깨끗하게 분갈이가 된 화분들이 문 옆에 정갈하게 줄지어 있다. 스마트폰에는 올봄에 필요한 퇴비를 신청하라는 이장님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다시 돌아온 봄날, 나의 이웃들은 “쪼그만 풀꽃“ 처럼 자신의 생을 건너고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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