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훗길 / 김소월

서대선 | 기사입력 2025/04/28 [09:15]

[이 아침의 시] 훗길 / 김소월

서대선 | 입력 : 2025/04/28 [09:15]

훗길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

딸과 아들을 기르기는

훗길을 보자는 심성(心誠)이로라..

그러하다, 분명(分明)히 그네들도

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

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

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

한길같이 외우는 말이

훗길을 두고 가지는 심성(心誠)으로

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 ‘할머니 덕입니다’. 매년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참배하고, 작은아버지께 들려 큰절을 올리는 큰집 조카의 표정 속에 할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산후 중독으로 열흘 만에 세상을 뜬 큰 며느리 대신 손자를 여덟 번째 자식으로 키운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여기며 성장한 큰집 조카였다. 조카 부부와 함께 큰절을 올리는 종손과 종질녀를 바라보며 “훗길”이 믿음직스러웠다.

 

자신의 사업체를 성실하게 운영하고, 종친회 청년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큰집 조카를 보며,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을 생각했다. 고대 농번기 사회에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圖書館) 같은 존재였다. 노인들의 지혜와 희생의 역사를 밑거름으로 하여 마을이 존속되고 발전하였으며,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자녀 양육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전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번창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삶의 경험이 누적된 지혜로운 할머니들은 젊은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돌보아 사망률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의 진화생물학자 비르피 루마(Virpi Lummaa) 박사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캐나다와 핀란드에 살았던 2800명의 여성들 가족사를 조사해, 완경(menopause)을 지난 할머니가 자손 번창에 결정적인 기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생물학적인 사고에 따른다면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다음 세대의 재생산을 위해 살아간다. 이것은 ‘이기적인 유저자’의 절대명령이기에 대부분의 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생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50세를 전후하여 완경(menopause)을 맞는다. 그런데 더 이상의 생식을 할 수 없게 된 인간 여성들이 70세 이상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스스로 자립하기까지의 기간이 길다. 완경을 끝낸 여성들은 직접적인 재생산은 끝났지만, 다른 여성의 재생산된 생명을 보살펴주어 같은 유전자를 지닌 후손의 수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할머니다. 

 

2024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2023년(0.72명) 대비 0.03명 증가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National Asembly Budget Office)에서는 2023년 2분기 지점인 0.7명을 유지하는 장기 저출산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2020-2024년 총인구 증가율은 –0.27%로 통계청이 예측한 –0.16%보다 가파른 인구감소가 예상된다. 이런 추세로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교육, 국방, 노동, 세대 간의 부담에 미치는 영향은 커질 것이다. 

 

“그러하다, 분명(分明)히 그네들도/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한길같이 외우는 말이/훗길을 두고 가지는 심성(心誠)으로/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며 ‘느린 달이 차오르(The slow moon climbs)’듯 조부모도 자손의 성장과 교육에 도움을 주며, “훗길을 보자는 심성(心誠)”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극복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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