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완벽한 복수

홍사라 | 기사입력 2025/05/12 [13:41]

[홍사라의 풍류가도] 완벽한 복수

홍사라 | 입력 : 2025/05/12 [13:41]

  © 홍사라

 

5월은 무슨 무슨 ‘날’이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그래서 준비해야 할 일도 많고, 선물도 많이 사야 한다. 이번 어린이날은 서울에서 조카들이 많이 놀러 와서 선물을 몇 배로 준비해야 했다. 지난달부터 ‘장난감 부자인 조카들에게 뭘 사줘야 하나…. ’고민이었다. 이제 없는 장난감도 없어 보이고(그들은 늘 부족하다고 얘기하지만!), 더군다나 조카들의 어머님들이 집에 더는 쓰레기가 늘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제발 장난감을 피해달라고 사정을 하던 터였다. 고민고민하다가 이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 어린이날이니만큼 기억에 남게 만들어보자. 일단 집에 장난감이며 인형이 너무 많으니까,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을 준다고 해야겠어…. 꼭 물질적인 선물일 필요야 있겠어? 어차피 여기저기서 선물을 많이 받을 텐데, 그냥 선물로는 임팩트가 없을 테니, 나는 일단 마음만 준다고 ‘사랑해’가 가득 담긴 카드만 써서 주고, 선물은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줘야지. ‘경험에 따르면 어린이날 즐겁게 놀았던 기억, 그리고 그때 받았던 선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면 더 임팩트가 강한 법이고.

 

장난감이 가득한 가게에 들러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카드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선물을 미리 포장해 숨겨두고, 카드도 미리 써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조카들이 카드만 주었을 때 크게 실망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나름의 대비를 해두었다. “이모의 이번 어린이날 선물은 이모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소~~중한 마음이 담긴 편지!!” 이렇게.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이 더 소중하다며 하루에 한두 번씩 세뇌작업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살짝 심통이 난 듯 뚱~한 표정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마음이 듬뿍 담긴 부모님의 편지보다 인형 선물이 더 좋았다. (지금은 물론 그 편지가 더 소중하다) 아직도 그때 받았던 수많은 편지보다, 놀이동산에 간 기억이나 인형을 받으며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던 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극히도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마음이었지만, 순수한 어린이니까 당연하다. 울 조카들도 똑같겠지. 풀이 한껏 죽은 조카들은 “마음의 선물”을 주겠다고 공표한 그 날부터 5월 5일이 되기까지 하루에 적어도 10번 이상씩은 이런 대화를 시도했다. 

 

“이모~~근데~~정말 마음만 주는 건 아니지?”

 

“아니, 정말 마음이 담긴 편지만 줄 거야~ 왜??!! 내 마음이 얼마나 큰 건데…. 그건 싫어? 부족해??” 이렇게 슬픈 연기를 하면서 대답하니 조카 왈,

 

“아니~~ 마음이 중요하지, 근데…, 그러면 그 마음은 어떻게 생겼어??”

 

“응???”

 

“아니, 그 마음으로 그럼 뭘 할 수 있어? 놀이 같은 걸 할 수 있어??”

 

하하하…. 이게 무슨 말이야….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라 당황스러웠다.

 

마음으로 뭘 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아…. 이 녀석들이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았구나….’ 알 수 있었다. 말인즉슨, 내가 선물을 사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싶으면서도 왠지 자꾸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번에는 계속 선물은 없다는 내 입장을 고수했다. 매일 같은 대답을 하니 아이들도 슬슬 믿는 눈치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이날.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받은 선물은 책 선물.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동화책임에도 약간은 억지로 좋아하는 미소를 띠며 ‘감사합니다~~’ 고 인사를 했다. 그다음으로 나의 ‘마음이 듬뿍~ 담긴 카드.’를 전달했다. 카드만 받아든 녀석들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카드를 꺼내 읽더니 억지 미소가 듬뿍 담긴 목소리로 “이모~ 마음이 담긴 카드 감사합니다.” 하길래, 나는 “어~~ 카드만 줘서 싫은가 봐, 역시 내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거였어~!” 했더니, “아니야~~” 라고들 했지만, 얼굴에 너무 빤히 비쳐나오는 실망감을 감추기에는 부족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재밌던지. 그 뒤로 엄마아빠와 또다른 이모들에게 지극히도 물질적인 선물을 받을 때마다 우리 어린이들은 진정한 함박웃음을 보여주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저녁을 먹을 즈음, 아이들에게 신발장에 가보라고 했다. (선물은 거기 숨겨두었다) 잠깐 ‘뭐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뭔지 알겠다는 듯 너나 할 것 없이 현관으로 뛰어가 선물들을 집어 든 아이들의 표정은 오늘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다. 신이나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참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이번 어린이날 나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버이날.

나는 어버이는 아니지만,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친절하게 나에게도 줄 게 있다면서 카드를 건넸다. 완전 감동~! 나는 기대에 부풀어 편지를 꺼냈다. 그런데 그 편지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랑하는 이모, 나도 이모처럼 마음의 선물을 준비했어, 강아지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키우는 강아지가 좀 아팠다.)”

 

“이모~ 마음의 선물은 그게..그게.. 말이지..^^ 좋았어. 그래서 나도 이모한테 나의 마음만 줄게.. 행운의 마음.. 그리고 그동안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니!!!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어른답게 꾹 참고, 나중에 언니랑 동생이랑 같이 보면서 진짜 깔깔 웃었다. 이보다 완벽한 복수가 있을까? 한 대로 돌려받은 이번 카드, 정말 인과응보란 말이 딱이다. 하하. 이런 복수라면 열두 번도 더 받아줄 수 있다. 카드에 대한 답으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두었다. 

 

“얘들아, 나는 마음을 주고, 물질적인 선물도 줬잖아? 그러니까 나도 이 카드 다음에 오는 물건을 기대해도 되는 거지?”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아, 당했다!! 하하하.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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