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노트] 커피 한 잔에 담긴 두 개의 마음소설가 곽현주와 주인공 이윤 사이, 편집자 김요섭이 발견한 닮은 결# 문화저널21 <출판인노트>는 출판 기획자, 편집자, 마케터 등 현직 출판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무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이윤은 한때 사진을 전공했지만, ‘어디든 떠날 수 있어서’라는 이유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택한 인물이다. 반면, 이 책을 쓴 곽현주 작가는 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교대생이다. 휠체어를 탄 채 강단에 서는 꿈을 키우며, 얼마 전엔 교생실습을 통해 교육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물리적인 제약이 있는 그녀에게도, 교실은 떠나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곽 작가와,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지만 머무는 곳을 택한 이윤. 둘은 겉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두 사람이 어쩐지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그들을 닮게 만드는가. 나는 그것이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한 사람은 커피머신 앞에서 세상을 듣는다. 두 사람 모두 ‘머물러 있는 곳’에서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진실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윤은 단 한 번도 화려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조용한 태도로 누군가의 말 없는 고백을 품고, 자신의 잊고 지낸 꿈을 다시 떠올린다. 곽현주 작가 역시 자신의 감각을 그 조용한 태도 속에 담아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삶을 향한 천천한 접근이다.
이윤이 커피를 내리는 순간마다, 우리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다. 그 손님들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다. 이윤의 삶에 스며드는 타인의 조각들이다. ‘루비쿠키의 정체’에서 그는 손님의 감정을 읽고, ‘12시55분 레모네이드 걸’에선 스스로의 상처를 비춘다. ‘설경은 휘핑크림 맛’이라는 장에서는 말보다 풍경이 먼저 이윤의 마음을 흔든다. 이 장면들이 인상적인 건, 이윤이 손님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척’을 감지하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작가가 가진 섬세한 감정 레이더의 반영이기도 하다.
특히 “단풍잎과 아메리카노”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감정적 정점을 만들어낸다. 손님의 울음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위태로운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느끼는 이윤의 순간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지켜내는 소설의 정서를 상징한다. 언어는 때로 무기가 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윤은 그 사이에서 말 대신 휴지를 건넨다. 그 조용한 행위는 오히려 수많은 언어보다 강한 공감을 전달한다.
한편, 곽현주 작가가 교대생으로서 지닌 정체성은 이 소설의 섬세함과 따뜻함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그녀는 언젠가 학생들 앞에 서서, 그들의 삶을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교사’가 되기 위한 그녀의 마음속 리허설이자, 언젠가 마주할 교실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연습장이기도 하다. 이윤이 카페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곽 작가는 언젠가 교실에서 아이들의 삶을 듣고 공감하는 ‘듣는 교사’가 되리라 믿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커피 한 잔이 전하는 온기가 남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따뜻함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책은 삶의 결을 바꾸는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매일 오가는 공간에서 놓치고 있는 ‘느림’과 ‘정중함’을 되짚게 만든다. 이윤은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다. 듣는다는 건,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곽현주 작가는, 그렇게 듣는 사람을 소설 속에 심어 놓았다. 그것이 우리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그 명제를 커피 한 잔 분량으로 끓여낸다. 나는 이 책이 누군가의 오후에, 혹은 무심코 넘긴 하루의 끝에서, 묵직한 잔향처럼 오래 남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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