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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염낭게나 집게, 아무르 불가사리나 바지락은 갯벌의 모래를 씹어서 유기물을 빨아먹고 깨끗해진 모래만 다시 뱉어낸다. 그들은 갯벌의 청소부들이다, 가령 누군가의 말을 씹어서, 오물거리면서, 맛을 보고, 자양분을 섭취한 후, 다시 뱉어낼 수는 없을까.
민물도요나 알락꼬리마도요는 갯벌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염낭게나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가 구멍 밖으로 나올 때 날쌔게 잡아채 먹는다. 도요새들에겐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의 어떤 집중이 필요하리라, 마음에도 정신적인 측면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마음의 육체적인 측면, 즉 말이 미처 되지 못한 생각은 거기도 고요와 침묵의 뒤범벅으로 붐빌 테지만.
주꾸미의 모성은 눈물겹다. 오십여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제 새끼들 곁을 지킨다. 다시 말하지만, 주꾸미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 나무들을 휘감고 오르는 넝쿨식물의 가지들을 다듬어 주고, 마당 탁자에 앉아 쉬는데, 우리집에 기대어 사는 어미 길고양이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마당 가운데로 왔다. 어미 길고양이는 입에 물고 온 개구리를 새끼들 앞에 내려놓았다. 잠시 정신을 차린 개구리가 폴작 뛰어 달아나려는 데, 어미 길고양이가 재빨리 앞발로 개구리를 제압하는 모습을 새끼들 앞에서 시연해 보여주었다. 그다음엔 개구리를 새끼들 앞에 놓아 주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개구리가 다시 폴짝 뛰어 달아나니, 새끼 고양이 중 하나가 어미처럼 몸을 움직여 앞발로 개구리를 잡았다. 어미 길고양이는 새끼들에게 생존전략의 방법을 실전으로 가르쳤는데, “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어미 고양이가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새끼들에게 실전으로 가르쳤던 방법은 인간의 삶에도 적용된다. Bandura(1925-2021)는 사회학습이론에서 관찰 학습의 4단계는 주의 집중, 파지(把持), 행동 생산(운동 재생), 동기화(動機化) 과정의 순서로 학습된다고 하였다. 주의 집중 과정은 모델의 어느 행동에 주의를 집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관찰자의 동기유발 상태, 과거 강화(强化), 각성(覺醒)수준, 감각 능력, 개인적 선호 등의 특성이 중요 요소가 된다.
이때 모델의 대상이 성(性)과 연령이 비슷하거나, 모델의 대상이 어미 길고양이처럼 새끼들보다 지위가 높고, 유능하고, 존경을 받거나 매력적일 때, 주의 집중을 많이 받는다. 관찰 학습의 두 번째, 단계인 파지 과정은 정보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시각화 혹은 언어화와 같은 상징적 형태로 기억하는 과정으로 시연, 암송 등을 통해 학습자의 기억에 전이 된다. 어미 길고양이가 새끼들 앞에서 뛰어 달아나는 개구리를 앞발로 잡아채는 행동을 직접 시연해 보여준 행동의 순서를 새끼들은 기억 속에 저장해 두게 되며, 머릿속으로도 시연해 볼 것이다.
관찰 학습의 세 번째 단계는 행동 생산과정으로 관찰에서 학습한 것을 신체적 행동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연습, 피드백, 재 교수 등을 통해 정교화할 수 있다. 관찰 학습의 마지막 단계인 동기화 과정은 관찰자의 동기유발 과정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필요한 학습 내용이라도 학습자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학습이란 계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강화(强化)에 대한 기대가 생기면 학습한 것을 활용하려는 동기가 생기고,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으면 동기가 유발된다. 그러기에 “민물도요나 알락꼬리마도요는 갯벌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염낭게나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가 구멍 밖으로 나올 때/날쌔게 잡아채 먹는다. 도요새들에겐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다만 마음의 어떤 집중이 필요하리라”.
“염낭게나 집게, 아무르 불가사리나 바지락은 갯벌의 모래를 /씹어서 유기물을 빨아먹고 깨끗해진 모래만 다시 뱉어낸다./그들은 갯벌의 청소부들이다,” “가령 누군가의 말을 씹어서,/오물거리면서, 맛을 보고, 자양분을 섭취한 후, 다시 뱉어낼/수는 없을까.” 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 쏟아지는 말들 속에도 자양분이 있는 말과 오염된 말들이 “갯벌의 모래”처럼 섞여 있음을 전언한다. 언어도 학습된 것이다. 천박하고, 폭력적이고, 저주를 담은 악담들도 누군가로부터 학습된 것이리라. “염낭게나 집게, 아무르 불가사리나 바지락처럼”, 오염된 말의 갯벌을 청소하여, 아름답고 실용적인 우리 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세계지도를 넓혀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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