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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 내면의 진실을 성찰하게 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가장 오래된 사회적 기제로 존재해왔다.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전통적으로 위로와 연대의 힘이 되어왔고, 독재와 억압의 시절엔 저항과 양심의 목소리로 존중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되묻게 된다. "종교의 정치 개입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본질적인 질문.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정치적 주장들은 진실인가, 혹은 위선인가?"
역사를 되짚어보면 종교와 정치는 늘 교차해왔다. 조선시대 유교 정치와 유럽 중세 기독교 국가의 관계, 현대 중동의 이슬람 신정주의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동시에 저항과 해방의 이념적 토대로 작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질 때다. 종교가 신앙의 이름을 빌려 정치 도구로 전락하고, 정치권은 이를 사회 분열과 이념 갈등의 촉매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보수 개신교 교단 소속 종교 지도자들이 강단에서 특정 정치인을 공개 지지하거나 반대하며, 예배가 정치 연설로 변질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2월 대선을 앞두고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는, 수천 명이 참석한 주일예배 중 담임목사가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며, 특정 후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 반대 세력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선택"이라며 강한 우회적 비판을 쏟아냈다. 해당 발언은 이후 일부 언론에 보도되며, 예배가 정치적 선동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교계 안팎에서 제기됐다.
종교의 본질은 중립성과 윤리성에 있다.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해야 할 종교가 특정 정파에 종속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신앙이라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교단에서는 교세를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까지 감지되고 있다. 이는 청년 세대의 종교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종교의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실적인 문제 사례로는, 대형 교단이 선거 기간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조직적으로 유도하거나, 예배 중 정치 성향의 설교를 반복하는 일이 있다. 또한 교단 헌금이 정치 행사 후원금으로 전용되는 회계의 불투명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관행은 종교계를 넘어 민주주의 전체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종교계 내부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 질서 전체를 흔드는 위협이다. 종교가 권력과 손을 잡는 순간,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윤리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교단 내부에 정치 활동과 신앙 활동의 경계를 감시할 수 있는 자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신학교 및 종교 교육 과정에서도 공공 윤리와 정치 중립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신앙의 자유를 넘어,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조직적 지지 활동을 규제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는 공공의 이익과 민주 질서를 위한 필수적 논의이다.
시민들 또한 종교 지도자의 말에 무비판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것이 신앙의 표현인지, 정치적 개입인지에 대해 냉철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예배와 정치 집회가 혼재되는 상황에선 그 의미와 목적을 따져보아야 하며, 공공의 가치에 반하는 언행은 지적될 수 있어야 한다.
종교는 혼탁한 시대를 밝히는 고요한 등불이어야 한다. 권력과 결탁하는 순간, 신앙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종교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사회적 지도자로 설 수 있으려면, 정치로부터의 독립성과 윤리적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통합과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교가 이념을 초월한 중재자, 고통받는 자들의 대변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종교가 다시 신뢰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 최세진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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