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혼자의 명절, 존재의 다른 이름

임병식 | 기사입력 2025/10/10 [10:12]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혼자의 명절, 존재의 다른 이름

임병식 | 입력 : 2025/10/10 [10:12]

 

온 나라가 들썩인다. 도로 위는 고향을 향하는 차들로 붐비고, 방송은 연신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금 대한민국의 전체 가구 중 약 30%가 ‘1인가족’이다. 다시 말해, 세 집 가운데 한 집은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이다.

 

명절이 되어도 찾을 고향이 없거나, 가야 할 곳이 있어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가족이 멀리 있고, 누군가는 가족이 있어도 이미 마음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들은 오늘도 조용한 방 안에서, 세상의 분주함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명절을 보낸다.

 

이 고요한 명절의 풍경 속에서, ‘혼자’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1인가족 시대의 혼자는 사회적 현상일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존재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혼자를 결핍의 상태로 본다. “명절에 혼자 밥 먹는 건 서럽다.”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으면 무섭다.” 이런 말들이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죽음학의 시선으로 보면,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을 만나는 자리다. 혼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한다.

 

명절의 집이라는 공간은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요 속의 명절 또한 다르지 않다. 방 안의 불빛, 익숙한 냄새, 창밖의 어스름한 가을빛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들은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속삭인다. 왜냐하면 고독의 본질은 타인 부재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 존재와의 동행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양희은의 노래 가사처럼, “아픔이 아픔을, 눈물이 눈물을 안아줄 수 있다.” 그 말은 곧, 나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품을 때, 그 아픔이 다른 누군가의 눈물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의 시간은 비록 외로워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길러지는 감정의 깊이는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법,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법은 결국 ‘혼자의 시간’을 통과할 때만 비로소 읽어진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연결을 요구한다. 더 많은 친구, 더 빠른 소통, 더 즉각적인 반응. 그러나 그 과잉된 연결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잃어버린다. 명절의 외로움은 그래서 단지 사회적 문제만이 아니라 존재적 과제이기도 하다. 혼자의 시간을 ‘부정’이 아닌 ‘머묾’으로 바꾸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1인 가족 시대의 인간다움이다.

 

죽음학에서는 이를 ‘머무는 치유(Stay Therapy)’라 부른다. 무엇을 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것이다. 혼자 밥을 먹는 순간, 혼자 거리를 걷는 순간, 혼자 불을 끄고 잠드는 순간에도, 그 시간은 나를 단련시키는 내면의 도량이 된다. 고독을 피하지 않고 감내할 때, 인간은 성숙해진다. 혼자의 명절은 그래서 슬픔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하나의 의례다.

 

올 추석, 모두가 모여 웃는 그 자리와 달리 혼자 있는 당신의 방에도 하나의 작은 등불이 켜져 있다. 그 불빛은 외로움의 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조용한 인사다. “괜찮아, 나는 오늘도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 말 하나면 충분하다. 1인 가족 시대의 명절, 인간다움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혼자서도 삶을 품어내는 힘 속에서 빛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따뜻하고도 단단한 인간의 얼굴이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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