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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라고 말할 사람 그 누가 있겠소.”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 속, 이 단호한 부정성의 질문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존의 선언이다. 또 다른 노래,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한영애의 목소리로 울려 퍼질 때, 그것은 외로운 영혼의 절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누군가 응답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다. 두 노래 모두 ‘부정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부정은 파괴의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치유의 언어다.
죽음학자의 눈으로 볼 때, 부정성은 삶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다. 부정성은 단순히 거부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서게 하고, 다시금 자기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김민기의 “아니요”는 사회가 강요하는 무의미한 동의와 적당한 타협에 대한 멈춤의 선언이다. 그것은 “나는 내 삶의 주체로 서고 싶다”는 저항이며, 동시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치유의 외침이다.
한혜경이 부른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의 물음은 더욱 간절하다. 그것은 응답 없는 세상에 던지는 부정의 질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치유의 씨앗이 숨어 있다. 외침은 공허를 향해 던져지지만, 누군가를 부르고, 결국 우리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응답 없는 시대에 던지는 부정의 물음은,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다시 응답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시대는 흔들리고 있다. 경제적 불안, 사회적 갈등, 개인적 고립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마음을 닫고, 침묵 속에 갇힌다. 그때 필요한 것은 억지 긍정이 아니다. 오히려 단호한 부정과 외로운 질문이 우리를 살린다.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의미한 삶의 강요, 불의한 권력, 끝없는 경쟁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나를 보아주기를, 내 고통을 들어주기를 요청하는 그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죽음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치유는 상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용기다. 부정성은 그 상처를 억지로 덮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힘이다. “아니요”의 단호함과 “거기 누구 없소?”의 간절함은, 바로 우리 시대의 흔들림을 버티게 하는 치유의 언어다.
그러므로 이 부정의 노래들은 절망의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노래다. 왜냐하면 이 노래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묻고, 다시 응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부정성은 삶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긍정하기 위한 부정이다. 흔들리는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부정의 용기,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응답의 언어일 것이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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