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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김민기의 노래가 어느새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계절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광석의 목소리도 저 멀리서 되살아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나는 가네…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그 노랫말처럼 우리는 어딘가로 떠밀리듯 걸음을 옮긴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를 품어 안으면서도 동시에 떠나게 만든다. 머물게 하되 머물지 못하게 하고, 붙잡게 하되 놓아주게 만든다. 이 역설 속에 가을의 윤리, 혹은 존재의 리듬이 숨어 있다. 가을은 '부정성의 계절'이다. 더 이상 푸르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그 중간의 시간. 삶과 죽음, 머묾과 떠남, 채움과 비움이 한 몸처럼 뒤섞이는 계절이다.
유치환 시인은 '바람'을 스승이라 했다. 바람은 잠시 멈춰 선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그 흔들림이 때로는 불안이 되고 슬픔이 되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감응으로 바꾸어놓는다. 삶이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떠나며 새롭게 머무는 일의 연속이다.
가을바람은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속삭인다.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기에 아름답고 모든 것은 사라지기에 의미가 있다. 낙엽은 죽음이 아니라 귀환이다.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 생명의 순환을 잇는다. 가을 여정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 시대는 너무 많은 것을 '유지'하려 애쓴다. 관계도, 기억도, 심지어 상처까지도 붙잡아둔다. 그러나 붙잡는다는 것은 때로 살아 있음을 잊는 일이다. 진정한 삶은 붙잡는 데 있지 않고 놓을 줄 아는 데 있다. 바람이 나무의 잎을 떨구듯, 우리도 불필요한 욕망과 슬픔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새 생명이 움튼다.
가을은 그래서 슬프지 않다. 그 슬픔 속에는 이미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학에서 말하는 '부정성'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생성을 위한 공간의 열림이다. 지나간 것을 인정하고, 비워내는 그 용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신을 회복한다.
나는 가을이면 오래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미 떠나간 이들에게, 혹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무는 이들에게.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안부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그 편지는 누군가에게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을의 편지는 도착보다 보냄 자체가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노래가 다시 귓가에 흐른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어쩌면 이 노래는 우리 모두에게 띄우는 생의 편지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그 마음이 흘러가는 한,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움은 끝이 아니라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를 비우고 채운다. 남기지 않음으로써 남는 것, 떠남으로써 다가오는 것, 그것이 가을의 철학이자 삶의 윤리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그곳으로 우리는 또 간다. 어제를 스승 삼아, 다시 오늘의 길 위로 나선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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