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의 시대읽기] 과학적 지식은 잠정적

손봉호 | 기사입력 2018/08/13 [08:40]

[손봉호의 시대읽기] 과학적 지식은 잠정적

손봉호 | 입력 : 2018/08/13 [08:40]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현대인에게 자연과학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모든 진리의 모형, 모든 발전의 모태, 모든 문제의 해결사란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이런 현대 과학에 대해 기독교도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과학에 대해 오늘의 기독교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1) 과학적 지식을 모든 객관적 지식의 표준으로 인정해 그 기준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하거나 증명하려는 시도와 (2) 과학적 지식과 성경의 가르침은 서로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므로 상호 불간섭,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하는 입장은,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무지의 소치나 신화로 간주하게 되고 따라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게 된다. 성경의 권위를 증명하려는 입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과학적 지식은 원칙적으로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음을 전제하되, 양자 간에 나타나는 차이와 갈등은 성경이나 과학 지식 그 자체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현재 상태의 성경 해석이나 과학적 연구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취급한다.

 

과학적 지식과 성경의 가르침이 상호 불간섭, 공존한다는 입장은 그리스도인이면서 과학자인 사람들 대부분이 취하는 것으로, 학문 활동과 신앙생활을 큰 갈등을 느끼지 않고 병행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입장도 과학적 지식 그 자체의 권위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 과학이 과연 그렇게 절대적인가?

우선 용어부터 분명히 정립하고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과학을 곧 자연과학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란 것도 있고, 후설(Edmund Husserl) 같은 철학자는 심지어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과학’은 그저 ‘이론적 지식’이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성의 능력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지식(episteme)은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반면에 주로 경험에 근거한 상식(doxa)은 불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주후 1세기에 전파된 ‘십자가의 도’가 그런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오늘날 기독교가 불안한 관심을 갖는 것은 과학 일반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다. 물론 자연과학이 곧 과학이고, 모든 확실한 지식은 자연과학처럼 엄밀하거나 자연과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관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유물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혹은 철학적 주장일 뿐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의 동일성’(uniformity of nature)을 전제한다. 모든 자연현상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초로부터, 어디서든지 물은 0도에 얼고 100도에 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이제까지 한 번도 반증되지 않았으므로 자명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반드시 타당하다는 보장은 없고, 그런 전제로는 정신현상과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이 주장한 것처럼 사랑, 고통, 죽음, 윤리, 의미 등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동일성을 갖고 있지 않고 따라서 자연과학의 범주 바깥에 있다.

 

전통적으로 ‘과학’이란 이름을 가지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논리적이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실증될 수 있어야 한다. “물은 0도에서 언다. 그러므로 0도에서 어는 것은 다 물이다”는 발언은 비록 실험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더라도 과학적 발언은 아니다. 논리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모든 귀신은 뿔을 가지고 있다. 산신령도 귀신이다. 그러므로 산신령도 뿔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실증할 수 없으므로 과학적 발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두 조건도 지금은 자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해 놓은 학문 공동체의 약속일 뿐 그 자체로 영원불변한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경험을 무시하고 논리적인 타당성에 큰 무게를 두었으나 종교개혁 이후로 실험이 과학적 지식에 필수적이 되었다. 앞으로 그 조건들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물리학자요 철학자였던 칼 포퍼(Karl Popper)는 모든 자연과학적 설명은 ‘가설연역적 방법’(hypthetico-deductive method)에 따라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저기서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에 온도가 0도일 때 물이 어는 현상을 보고 “모든 물은 0도에서 언다”는 결론을 내리는 귀납적 방법(inductive method)이 아니라, 과학자는 우연의 경험이나 창조적인 사고를 통해 먼저 “물은 0도에서 언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을 반증(falsify)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

 

만약 그 가설이 실험을 통해 한 번이라도 반증되면, 즉 0도에서 물이 얼지 않은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으면, 그 가설은 폐기된다. 따라서 그 가정은 폐기될 때까지만 타당한(valid) 이론으로 인정된다. 그것은 어떤 이론도 영원히 폐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과학적 진리는 잠정적으로만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이 거기에 목을 맬 이유는 없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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