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분석] 역사로 보는 ‘한·일 협정’ 그리고 해법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19/08/06 [10:34]

[MJ분석] 역사로 보는 ‘한·일 협정’ 그리고 해법

최병국 기자 | 입력 : 2019/08/06 [10:34]

최근 일본의 연속적인 경제침략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등, 우리 경제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 일부 정치인 및 진보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1965년 조인된 한·일 협정의 무효화나 폐기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냉철한 국제정세와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적, 감정적 주장(선동)이다. 한·일 협정 파기(무효) 주장은 도리어 어려움만 가중할 뿐이다.

 

  • 1965년 한·일 협정 체결의 막전·막후 
  • 피해자 개별청구권 문제

 

1910년 8월 22일 이완용 총리대신과 데라우치 통감의 합병조약에 따라 같은 달 29일 국권이 피탈 당했다. 이후 36년이 지난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후, 1950년대 이승만 정권 때부터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상은 시작됐으나, 지지부진했고, 5·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 및 일본 자본 도입을 추진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한일회담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회담 하면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외에 수출입은행 차관 1억 달러 등, 도합 6억 달러’의 대일청구권 문제에 대해 합의했고, 합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근간으로 1964년 한일협상이 타결됐다. 이런 과정에 학생들의 극렬한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6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진압하기도 했다.(소위 ‘6.3사태’)

 

1965년 6월 22일 동경에서 한국의 이동원·김동조와 일본의 시이나 에쓰사부로오·다까스기 싱이찌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한일 청구권협정’”에 서명했고, 12월 18일 발효됐다.

 

1965년 체결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일명 ‘한일기본조약’)은 국권 침탈하기 위해 일본이 강제적으로 체결한 경술국치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미국의 중재 하에 14여 년간 협상 끝에 당시 절대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부득이 체결한 조약이었다. 

 

그러므로 국권침탈 조약과 같은 원천무효의 조약은 아니다. 협정 체결을 통해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은 포항제철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투입돼 비약적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국력은 미약하였기에 더 많은 자금을 받아 낼 수 없었고, 경제협력자금에서 개인청구권의 소멸·유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논란의 불씨를 남겨 ‘오늘날 사태’의 근원이 됐다.

 

(위안부) 징용피해자들의 개별청구권과 관련하여 1965년 일본 외무성은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일협정과는 별개로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라는 취지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1990년대까지는 '한일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다(1992년 일본 외무성 야나기다 순지 조약국장)'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징용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이후부터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포기됐다'고 주장하면서 태도를 바꾼 것이다.

 

  • (징용) 피해자들의 재판 진행 상황
  • 원고 승소판결과 후폭풍

 

고(故) 여운택, 이춘식 씨(99세) 등 징용피해자 4명은 1990년대 후반 일본 법원에 전범 기업인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1, 2심 재판에서 연달아 패소했다. 이후 일본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에도 상고했으나, 최종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후 2005년 2년 한국법원에 다시 제소했으나 1, 2심에서 연달아 다시 패소했다. 상고 후 2012년 5월에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하면서 2심인 고등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면서 파기환송 시켰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서 2013년 고등법원에서 또다시 원고 승소판결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피고인이자 전범 기업인 신일철주금이 고등법원 판결 직후,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재상고 된 징용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배상) 재판은 박근혜 정부 내내 진척이 없다가 2018. 10. 30.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고(故) 여운택 씨 등, 징용피해자 4명에게 피고(신일철주금)는 각 1억 원씩을 지급하라”라는 원고 승소의 최종 판결을 내렸다.

 

2005년 2월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한 이후부터 13년 8개월의 세월이 흘러서야 최종 판결이 난 것이다. 이런 세월 속에 소송을 제기한 4명 중 여운택 씨 등 3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생존자는 99세인 이춘택 씨뿐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2013. 2. 25) 이후에는 재판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에서 배상판결을 하면 경제보복을 하겠다.’라는 협박성 압박이 무수히 들려오기도 했다. 일본이 오늘날 자행하는 보복카드를 들먹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의 배상판결 후, 일본 정부는 강력히 반발하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라면서 ‘한국정부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압박했고, 전범 기업인 신일철주금 역시 배상을 거부했다. 이에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 정부가 해결하라는 일본을 제안을 거부하자 압박 수위를 높여오다 우리 경제를 침몰시키기 위해 1∼2차 융단폭격을 가했으며, 추가보복까지 예고하고 있다. 국권침탈에 이은 제2의 (경제) 침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앞둔 1일 오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외교부)

 

  • 일본이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다면
  • 냉정심을 갖고 싸워서 이겨야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분명 원수의 무리다. 그러나 한반도가 존재하는 한 숙명의 이웃이다. 가까이할 수도 내 칠 수도 없는 잔인한 운명의 당사자들이다. 국교를 단절할 수도, 관계를 파탄 낼 수도 없다. 여기에 최대 우방국인 미국마저도 일본을 편들고 있다는 우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런 서글픈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없앨 수 없다면 냉정심을 갖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

 

국력이 미약하였기에 식민지배의 치욕을 당했고, 가난을 물리치고자 몇 푼의 돈을 받으면서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 자금으로 경제발전의 기반도 구축했다. 서글픈 역사지만 부인할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대한민국의 지나온 발자취다. 

 

역사는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승계적 발전을 통하여 진화한다. 과거는 부정할 수 없으며 미래의 거울과 지팡이 노릇을 한다. 이것이 역사발전의 법칙인 것이다.

 

일본의 연속적인 경제보복으로 주가가 연일 폭락하면서 동아시아의 정세가 불안한 긴장 속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중국, 대만 등 주변국 들은 은근히 한·일 경제전쟁을 즐기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듯한 모습까지 감지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타협해야 하고, 적과도 동침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엄연한 교훈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만주벌판에서, 노령에서 말달리며 울부짖었다. 해방투쟁의 결과는 강대국들에 의한 남북분단이었다. 이러한 납북분단은 일제식민지의 더러운 유산에 불과하다.

 

분단의 아픔 속에 힘을 합쳐 근대화와 산업화를 일구어냈고, 암흑의 시대 죽음의 산과 피의 강을 넘어가며 민주화를 달성했다. 이러한 한민족의 우수성과 강인함은 세계만방에 알려져 한류 문화를 꽃피우면서 글로벌 국가로 성장했다.

 

세계를 향해 비상의 나래를 힘차게 펼치려는 세계사적 운명전환의 순간에 무도한 일본의 경제 폭격으로 우리 민족을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아무도 우리 민족을 도와주지 않는다. 오직 우리 스스로가 광명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위기는 기회를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기 속에 침몰하면 아니 된다.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현실의 인정 속에 단합된 힘으로 일본을 이겨내는 것뿐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정세는 너무나 엄혹하다.

 

철천지원수인 일본을 없앨 수 없다면, 흥분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이성 속에 현명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흥분은 금물이다. 국교단절 및 정상적으로 체결된 1965년의 한일협정 폐기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은 도리어 적국 일본을 도와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서민들 인생의 파탄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원망으로 되돌아온다. 실현 불가능한 한일협정 폐기주장 등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는 정녕 난국해법의 답이 아니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