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프레임] 공수처 동상이몽에 가려진 ‘패스트트랙 수사’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9/10/16 [18:26]

[정치프레임] 공수처 동상이몽에 가려진 ‘패스트트랙 수사’

박영주 기자 | 입력 : 2019/10/16 [18:26]

16일 국회에서는 여야3당 원내대표가 만나 패스트트랙 법안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하지만 여야의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회동은 빈손으로 끝났다. 

 

국정감사 일정 도중 갑자기 불거져 나온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 이후, 자유한국당은 즉각 공수처 불가론에 불을 지폈다. 갑자기 야당에서 공수처 문제를 언급하고 나서면서 여당 역시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맞섰다.

 

하지만 야당이 쏘아올린 ‘공수처’ 이슈 덕분에 검찰의 패스트트랙 수사 진행과정은 쏙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정경심 교수를 상대로 ‘조사없이 기소’라는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섰던 검찰이 소환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자유한국당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입을 통해 ‘국감이 종료된 이후 일정을 협의해서 출석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모자라 국감일정 도중에 앞장서서 공수처 반대 목소리를 높이자, 관련 의혹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 올해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 20여명은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장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발빠른 수사를 촉구하고 수사지연에 대해 항의하고자 함이었다.   (사진=문화저널1 DB / 자료사진)

 

16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자유한국당 의원 60여명에게 이번주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응하지 않았다. 검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은 지난 4일과 지난달 27일을 포함해 총 3차례에 이른다. 

 

이미 고화질 동영상을 비롯해 수사과정에 필요한 증거물을 전부 확보한 검찰이 3번이나 기회를 줬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조사없이 기소에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혹이 쏠리고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일정이 끝난 이후에 일정을 협의해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에 앞서 황교안 대표는 “검찰은 제 목을 치시라. 그리고 거기서 멈추시라”며 자당 의원들에게 수사기관에 출두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 

 

혹시 있을지 모르던 ‘조사없이 기소’ 카드를 예의주시하던 자유한국당이 조국 사퇴 직후 돌연 공수처 설치 반대 이슈에 불을 붙이면서 기세등등하게 나오자, 여당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당장 어제부터 공수처 반대 주장을 펴는 것에 대해 “온 국민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것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를 반드시 해야 된다는 것인데, 자유한국당의 얘기는 고위공직자 비리를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뜻이냐”며 “그동안 안 된다는 얘기를 언제 했느냐.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하고 나니까 이제 태도를 돌변하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같은당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도 “자유한국당의 공수처 반대는 역대급 억지”라며 “권력의 최상층 비리를 차단하는 것이 어떻게 집권 연장음모가 될 수 있느냐. 혹시 사정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어서 못 마땅한 건지, 검찰도 수사대상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을 막자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소환조사에 계속 불응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행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필요성을 앞장서 보여주는 양상이다. 

 

일반인인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을 상대로는 고강도 수사를 계속해온 검찰이 고위공직자인 국회의원을 상대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이미 여론은 검찰의 칼날은 일반인에게만 가혹한 것이냐며 들끓고 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대로 된 수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고위공직자를 봐주기 위함이거나,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손 하나 쓰지 못하는 무력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기 위한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을 상대로 이뤄진 이전의 수사들이 검찰 스스로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의 족쇄로 작용하는 꼴이 벌어진 것이다.     

 

▲ 대검찰청 앞에 펄럭이는 검찰 깃발.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공수처 설치가 갖는 성격 역시도 검찰과 정치권의 유착 의혹에 불을 지피기 충분한 상황이다. 여당에서는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동시에 고위공직자를 한정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원래 가지고 있던 무기마저 빼앗기고, 다른 조직이 앞장서서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공수처 설치’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치 반대를 외치는 것은 검찰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소환조사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자유한국당이 검찰이 달가워할 공수처 설치 반대를 외치는 것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과 정치권의 유착 의혹은 지금의 ‘검찰개혁’ 목소리를 만들어낸 땔감이었다. 검찰개혁이 못마땅한 검찰에게도, 공수처 설치가 못마땅한 자유한국당에도 일련의 의혹을 해명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법은 하루빨리 검찰에 출석해 수사를 받아 결백함을 증명해보이는 것이다.  

 

이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직자 6명, 보좌진 6명 등이 자진 출석해 10시간이 넘는 고강도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명분을 만들었다. 공은 자유한국당과 수사의 칼날을 쥐고 있는 검찰에게 돌아갔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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