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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게 뭐야?".."저게 조선인 코란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교토 <코무덤>편(3)

김영조 | 기사입력 2009/10/05 [14:50]

"엄마 저게 뭐야?".."저게 조선인 코란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교토 <코무덤>편(3)

김영조 | 입력 : 2009/10/05 [14:50]
조선인의 코를 베어가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운반하는 수레길가에는 수 많은 사람이 나와서 구경했다고 한다 ⓒ이무성
 
1997년은 풍신수길이 교토에 통한의 “코무덤”을 만든 지 400주년 되는 해였다. 그 400주년을 맞아 교토 코무덤 앞에서는 추도식이 열렸다. 이어서 임진왜란과 코무덤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학술토론회를 열었는데 이날의 토론회를 일본어판으로 엮은 한 권의 책이 1998년 발간된《수길․귀무덤․400년(秀吉․耳塚․四百年), 김홍규 편저, 일본 웅산각 , 1998(사진)》이다.
 
책 제목이 “耳塚” 곧 귀무덤으로 표기되어 있어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이 책에는 누키이(關井正之)씨를 비롯한 일본인 3명과 박용철 씨를 비롯한 3명의 한국인이 각각 임진왜란과 풍신수길 그리고 <코무덤>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미 코무덤(2편)에서처럼 풍신수길이 정유재란의 전공(戰功)으로 베어 간 조선인의 코무덤을 귀무덤 으로 잘못 부르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한평생 <코무덤>의 진실을 밝히려고 전력투구한 재야사학자 고 조중화씨의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를 소개한 바 있다.
 
교토시 코무덤 조성 400주년 학술토론회를 토대로 엮은 책 《秀吉․ 耳塚 ․ 四百年》에서 <코무덤>을 다룬 한일 학자들의 핵심 주제는, “1) 귀무덤이냐? / 코무덤이냐?  2) 묻힌 코(귀)는 몇 개냐?”가 중심이었다.
 
임진왜란 400년 학술회의를 정리한 책 <수길 이총 400년>(왼쪽)교토 미미즈카 400년 학술토론회 사진, 아쉽게도 귀무덤이다. © 雄山閣出版(株)

 
그리고 토론회에서 연구자들의 주장은 약간씩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다음 부분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1) 풍신수길이 “코베기 명령”을 내린 것은 정유재란 때이며 조선인의 코를 베어와 묻은 이 유는 후세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2) 처음에 코를 묻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잔혹을 빌미로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이 <귀무덤>으로 바꿔 부르자 한데서부터 <귀무덤>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이 학술토론회 이전에도 메이지 시대에 이미 도쿄대학 호시노 박사가 그의 논문에서 《교토 코무덤은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다》라고 명확히 밝혔으며 나카오히로시 씨 역시 <코무덤>의 결정적인 1급 사료인 깃가와가 문서(吉川家文書)와 나베지마가 문서(鍋島家文書)에서 <코영수증>은 있어도 <귀영수증>은 없다며 <코무덤>임을 단정하고 있다.
또 결정적인 증거는 교토시에서 세운 <코무덤> 안내판이다.
 
1979년 교툐시에서 세운 안내판, "耳塚(귀무덤)"으로 표기(위)2009년 교토시에서 고쳐 세운 안내판, 가로 안에는 "鼻塚"(아래)2009년 9월 현재 사천 조명군총 옆에 잘못 세워진 "耳塚" 위령비     © 김영조

 
교토시 <코무덤>안내판에는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이 “너무 잔학하다.”라며 완곡한 표현인 <귀무덤>으로 하자 해서 이때부터 <귀무덤>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그 유래를 분명히 적고 있다. 이것은 하야시라잔의 주장 이전에는 “코무덤”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야시라잔의 말을 따라 이후 “耳塚” 곧 “귀무덤”으로 써놓았던 것을 교토시가 코무덤의 왜곡을 인정한 것인지 2009년 7월 19일 현재는 귀무덤(코무덤)으로 바꿔놓았다. 곧 “코무덤”을 추가해 넣은 것이다.
 
물론 풍신수길의 코베기는 그의 주군 오다노부나가에게서 배운 솜씨이다. 오다노부나가는 남녀 2,000명을 죽이고 신체에서 코를 베었다는 기록이《신장기(信長記)》에 있다고 나카오씨는 말하고 있다. 풍신수길이 오다노부나가 휘하에 있을 때 이미 코베기를 잘하여 우수한 장수로 뽑힌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직후 일본의 기독교박해 때인 1596년엔 26명의 성인(聖人) 순교 때에도 코를 베게 한 사실이 있다.
 
또 토론회에서 금병동씨는《본산풍전전수안정부자전공각서(本山豊前守安政父子戰功覺書)》라는 책의 내용을 들어 풍신수길이 “병사와 민간인을 가리지 말고 죽이고 여자는 물론 갓 태어난 어린이까지 남기지 말고 죽여서 그 코를 베라”라고 했다면서 금수보다 못한 일본군의 행위에 치를 떨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코를 묻었으면 코무덤이요, 귀를 묻었으면 귀무덤이다. 이 문제는 잔학성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위의 정리된 자료를 종합해보건대 풍신수길의 의도적 코베기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코무덤>을 <귀무덤>이라 부르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베어진 코는 조선에서 일본에 어떻게 운반되었을까? 베어진 코는 일단 배편으로 나고야까지 보내졌고 나고야에서는 오사카까지 다시 배편으로 그리고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육로를 이용하였는데 길가에는 개선장군처럼 큰 수레에 싣고 지나가는 조선인의 베어진 코를 보려고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나와 구경했다고 《朝鮮倭寇史》를 들어 금병동씨는 전하고 있다.   
 
자, 그러면 또 하나의 쟁점인 베어진 코의 수에 대한 견해를 보자.
세계인권문제연구센터 나카오히로시 교수는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코무덤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데 그는 코베기 기간을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부터 10월까지로 보고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각은 조중화 씨의 “코베기가 정유재란 때의 만행”이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그러나 교토시 코무덤에 묻혀진 코 숫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르다.


왜 이렇게 교토시 코무덤에 묻힌 코 숫자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는 베어진 코가 한군데 모아져 정확히 관리되고 있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예로 일본 곳곳에 “귀무덤” 또는 “코무덤”이라는 것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풍신수길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교토시 코무덤 외의 것으로써 조선출병 왜군들이 귀국 후 자신의 전공(戰功)을 과시하려고 빼돌려 묻거나 거짓무덤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조선에서 베어진 코 숫자가 서로 다르게 주장되고 있는 것은 후세에 기록하는 사람들의 부풀리기 내지는 착오 등 여러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 군감끼리 한반도 전선 허위보고를 놓고 벌어진 고소고발사건(우스기시사, 臼杵市史, 참조)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죽은 사람 수와 코 영수증의 허위문서 작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교토시 코무덤에 묻힌 정확한 코 숫자는 앞으로 더 정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코를 베어가면 풍신수길이 코 숫자를 확인했다. © 이무성

 
어쩌면 이 부분은 오래도록 밝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베어진 코 숫자를 근거 없이 부풀려서는 안 되며 또한 숫자도 중요하지만 교토 <코무덤>에 묻힌 것이 과연 <귀>냐 <코>냐의 문제이다. 분명히 교토시에 있는 무덤은 코무덤이라는 문헌이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이 무덤에 대한 코냐 귀냐의 논쟁은 막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신수길이 이 무덤을 만든 이유를 따져본다면 우리는 하야시라잔의 주장을 따라 <귀무덤>이란 완화된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된다. 그것은 일본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용인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통한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끝난 지 400년이 넘었다. 그리고 1997년엔 400주년 추도식과 학술토론회까지 열렸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인 <코무덤>에 대해서는 아직도 왜곡투성이인 채 한 술 더 떠 우리 스스로 역사 기록에도 없는 <귀무덤:이총,미미즈카>라는 용어를 만들어 계속 쓰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하랴!

[학술토론회에서 나온 코무덤 관련 자료들]
1. 吉野甚五左衛門覺書
2. 征韓錄
3. 淸正行狀
4. 朝鮮の役
5. 朝鮮物語
6. 木村又蔵覺書
7. 淸正朝鮮記
8. 淸正高麗陣覺書
9. 本山豊前守安政父子戰功覺書
10. 朝鮮征伐記
11. 武家事記
12. 和漢三才圖會
13. 征韓記畧
14. 島津家高麗軍秘錄
15. 中外經緯傳
16. 高山公實錄
17. 鍋島直茂譜
18. 黒田家譜
19. 元親記
20. 吉川家文書
21. 加藤家伝淸正公行狀
22. 面高連長坊高麗日記
23. 朝鮮倭寇史
24. 耳塚修營供養碑文
25. 日用集
26. 梵舜日記
27. 山城名勝志
28. 山州名蹟志
29. 本朝通鑑
30. 朝鮮軍記大全
31. 左傳
32. 二六新報
33. 齊藤實文書
34. 近世日本國民史
35. 文祿慶長の役
36. 信長記
37. 義演准后日記
38. 鼻請取狀
39. 豊臣秀吉譜
40. 看羊錄
41. 朝鮮日日記
42. 使行錄
43. 見聞別錄
44. 扶桑錄
45. 御沙汰書
46. 西遊草
 
<제4부> 통한의 코무덤 마지막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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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지난여름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회원들과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여행은 주로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일본 땅 구석구석에 다니며 한반도와 관련된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이번부터는 답사한 곳을 기록하여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글은 그 첫 회로 일본 교토시의 ‘코무덤’을 찾아 지금 국내외에서 ‘귀무덤’으로 잘못 전해지고 이것이 다시 확대, 재생산되는 현실을 알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파헤치는 글을 올립니다. 각 꼭지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회원들의 열띤 토론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윤옥· 김영조 두 사람이 자료, 문헌, 사진 등을 정리한 “쉬운 글쓰기”를 통해 여러분을 뵙고자 합니다. 많이 읽어주시고 고민도 즐거움도 모두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톺아보기’는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살피다”의 토박이말입니다.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59yoon@hanmail.net)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sol1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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