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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공 최종천 시인, "노동의 신성함 존중돼야"

한국시에 나타난 특이한 개성으로 주목받아

이건청주간 | 기사입력 2008/12/19 [11:16]

용접공 최종천 시인, "노동의 신성함 존중돼야"

한국시에 나타난 특이한 개성으로 주목받아

이건청주간 | 입력 : 2008/12/19 [11:16]

 
“1954년 전남 장성 출생.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1970년대 초부터 용접공으로 일함/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2년 제20회 신동엽창작기금 수상/ 시집 '눈물은 푸르다''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최종천 시인이 밝힌 자신의 이력이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이다. 용접 기술을 지니고 있지만 요즘은 문 닫는 공장들이 많아 일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수입은 매일 일한만큼 받게 되는 일당이 전부. 그의 시에서는 일종의 광휘 같은 게 빛난다. 눈 시린 광채를 들어내는 그의 시는 한국 시단에 나타난 특이한 개성이다.

그동안 노동시, 노동시인을 표방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노동해방을 직설적으로 들어낸 시들을 지향하면서 시로부터 멀어진데 반하여 최종천의 시는 노동을 제재로, 방법적 탐구에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잠자리도 주고 밥도 거저 주니 호강하네요’. 강원도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 창작 집필실에 머물고 있는 그를 이건청 본지 주간이 만났다.
 
 
이주간: 힘든 노동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군요. 최 시인 왜 시를 씁니까. 그리고 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최종천 시인: 저에게 시는 외부에서 입력된 것 아니라 내부에서 발아한 것입니다. 학력이 있는 시인들은 대부분 교과과정에서 시를 알지 않습니까? 저는 낙서로부터 시를 시작했습니다. 첫 시집에 들어가 있는 「코스모스」, 「섬」, 「미혼모」 같은 시는 어릴 적 제 낚서장에 있는 것입니다. 70년대에, 종로 르네상스라는 고전음악다방에 가니까 <시문학회 회원모집, **문학회> 라고 써 붙어 있더군요. 그게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동기입니다.

그보다 오래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잔업이 끝나고 전기담당과장이 저와 같이 하루를 자게 되었어요, 그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때 제 낚서노트를 보여 줬는데 "시" 라는 것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써보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정음사 문고판 박목월시집을 저에게 사 주었습니다. 이것이 시를 쓰는 방아쇠를 당긴 것입니다.
 
“노트에 적어보낸 시가 '세계의 문학'에 발표되었지만 그게 등단인지도 몰랐어요”

이: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셨지요? 등단 얘기를 해주시지요. 그리고, 심사는 누가 하셨지요.

최: 등단이 참 우연히 되었어요, 뭐냐면 그 당시에 저는 정한모 김우창 구상선생님들의 글을 읽고 있었지요. 86년입니다. 그 때 제가 일하고 있던 로켓트 보일러에서 조그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료중에 하나가 당시 주안에서 일어났던 시위에 참가하여 그게 말썽이 되어 회사에서 문제를 삼았읍니다.
 
그 사건을 다루어 쓴 시가 「되는 것일까」인데요 그외 「섬」 과, 「지상의 척도」 세편을 노트에 볼펜으로 써서 세 분께 편지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제가 세를 든 집 대문에 '세계의 문학'이라는 잡지가 우편함에 있는 겁니다. 그걸 보니 저에게 온 것이에요. 가지고 들어가 읽어보니 뒤에 편집진에 김우창선생님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등단인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2년 뒤 구상선생님을 통하여 '현대시학'으로 등단을 한 번 더 했지요. 그 뒤로 세 번인가 '세계의 문학' 문학에 작품을 발표 했는데 모두 김우창 선생님을 통해서입니다. 김우창선생님은 저의 첫 시집에 평을 써 주시기도 했습니다.
 
“짜장면 배달 다니던 곳에 '현대시학' 전봉건 선생님이 있었어요”

이: 최 시인은 문학 수업과정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누구의 시를 즐겨 읽었는지? 혹시, 습작기에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있었나요. 시 얘기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은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최: 지금 저는 문명비평적인 시, 지적인 긴장감이 있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음사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시집을 주로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말씀 드린 르네상스의 그 문학회를 그만두고 여러 문학회를 들락 거렸습니다. 그 중에는 보리수문학회가 있는데요, 지금도 보리수시낭송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 보리수문확회 회원들은 지금 대부분 시로 등단을 했습니다. 그들과 공부를 하며 습작기를 보냈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것은 전혀 없고요. 김광림선생님께 여름 방학 때에 두어 번. 성찬경 선생님께 두어 번 저의 작품을 드리고 체크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치료를 일 년 여 받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무작정상경하여 충정로 중국집에서 일을 했는데요, 그 때 짜장면 배달을 다닌 곳 중에는 『현대시학』이 있습니다. 굽어 늘어진 나무계단을 밟아 오르면 그 방에 언제나 단정히 앉아 일을 보시던 전봉건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계단에는 '현대시학' 쌓여 있어서 그걸 가져다 읽기도 했지만 그 당시 저는 시가 뭔지 겨우 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시는 매우 태만하고 나태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최 시인은 이제까지 자신이 쓴 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자신의 시를 통해서 이루고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최:  저는 문학잡지를 읽지 않습니다. 시집을 읽지만요. 저는 주로 철학서적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물학 서적을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 때문인 듯합니다. 많이 불행했습니다. 두 분이 싸움을 자주 하셔서요. 저는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어 그 문제를 고민해 보니 나 자신으로서는 답이 안 나오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미궁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시는 인간을 다룹니다. 인간에 대한 비평이라고 할까 그렇습니다. 저의 시에서는 자연을 찬양하거나 사랑한다고 하는 시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시에 쓰기를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곧 시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거죠. 그러나 이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시는 매우 지적으로 태만하고 나태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를 통하여 이루고 싶은 것이 뭐 있겠습니까? 시 자체를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은, 말씀드린 자의식다운 자의식 외에는 없다고 보아요. 문학에 주어지는 상 같은 것들은 운이라고 보기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합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라는 곳은 아주 협소한 보수주의자들의 장소입니다. 노동계급인 저 따위가 비집고 들어설 공간은 없지요.
 
“일을 하게 되면 하루 일당으로 8만원에서 12만원쯤 받지요”

이: 용접 일이 고생스럽지 않으신지요.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하루 일당은 얼마쯤을 받으시는지요.

최: 인간의 노동에 대한 혐오는 근거가 없지 않으나 잘 못 된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에 의해 인간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노동을 혐오함으로서 인간은 자신을 소외시켰습니다. 노동은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의 토대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가가 없는 세상은 가능하지만 노동계급이 없는 인간사회는 상상조차 불가합니다. 용접일은 고되기도 하지만 상당히 위험할 때가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일을 해 본 사람은 상징을 다루는 사무직보다는 실체를 다루는 물질노동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루일당은 지금은 많이 깍여서 8만원에서 12만원 사이를 왕래합니다. 그러나 워낙 일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당자체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 년에 210일이나 230일 정도를 일합니다. 일이 없기도 하지만 노동을 많이 한다는 것은 인간의 불행을 생산하는 것이니까요.
 
이: 최시인 가족 관계를 소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최: 저는 많이 못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노동계급입니다. 제가 결혼하지 못한 것은 이런 사정때문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결혼 않기를 아주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건 제가 생물학 서적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오정이라고 하지않나요? 그 실제는 우리가 낳은 우리의 이세들과 밥자리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요. 앞으로 인간은 참혹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노동계급은 결혼을 해서 2세를 꼭 가질 것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연의 생태계에서는 각 개체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포식자들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회에서 이 기능은 우리 노동계급에게 있다고 생각됩니다. 노동계급은 자연에서 식물과 같이 최초로 인간이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존재입니다. 자연이 있다고 해도 자연을 필요에 따라 가공하는 노동계급이 없다면 자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이: 최 시인께서 다른 취미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시지요?

최: 저는 시간의 대부분을 독서와  쓰기로 보냅니다. 하는 일이 전혀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외 음악을 심도있게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음악동호회가 있는데, 거기서 다루는 음악은 실로 다양합니다. 고전음악서 부터 최현대의 클래식 음악을 고루 다룹니다. 그렇게 음악을 같이 들으며 음식을 나누고 하는 게 활동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저의 취미는 노동 동료들과 어울려서 음담패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 겁니다. 저의 취미가 음악이나 그 외의 문화적인 것이라면 상당히 돈이 들어가야 겠지요. 그에 따라 저라는 가치도 달라지겠지요. 그런 면에서 취미는 직업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 친절하게 답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도 좋은 시간 보내시고요. 늘, 좋은 시 많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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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훈 08/12/21 [18:53] 수정 삭제  
  저도 이 분의 시를 읽어 봤는데 뭔가 독기가 느껴집니다
그냥 서정시는분명 아니고...
읽으면 읽을 수록 의미가 되씹어진느 시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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