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7전 8기의 신화, Jr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4/06 [15:34]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7전 8기의 신화, Jr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4/06 [15:34]

T.S.엘리엇이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구절의 위력을 나의 32년 복싱인생에 근접할 때 까지 한 차례도 체험하진 못했건만, 올해는 바이러스 광풍과 함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잔인하게 실감하고 있다. 

 

이런 참혹한 분위기속에 지난 주말 복싱 서부회 1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전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가 총관장으로 근무하는 경기도 시흥시 장현동 최용수 복싱클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날 취재에는 서부회 모임 회장인 원동희, 총무인 채예석, 수경사 출신의 84년 신인왕 출신 임종대 등 트로이카가 길을 안내하며 자리를 함께했다.  

 

▲ 의기투합한 정성호관장과 최용수대표 (우측)     ©조영섭 기자

 

65년 12월 4일 서강일이 최초로 세계 타이틀에 도전한 이후 30년 동안 한국 프로복싱은 수많은 세계챔피언을 배출했지만 유독 페더급과 라이트급 사이의 주니어 라이트급 만큼은 국내에서 서강일, 김현치, 김태호, 오영호, 최충일, 문태진 등이 7차례에 걸쳐 쉼 없이 정상을 노크했지만 최용수가 7전8기의 신화를 창조하기 까지는 단 한 차례도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였다. 

 

사실 이 체급은 알렉시스 아르게요(니카라과), 윌프레도 고메스(푸에르토리코), 홀리오  세자르 차베스(멕시코) 등 전통적으로 중남미 복싱이 두터운 아성을 구축한 높은 벽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95년 10월22일 이역만리 아르헨티나에서 당시 20전 18승(11KO승)2패를 기록한 동급2위 최용수가 홈링의 베테랑이자 동급 1위인 60전 58승(21KO승) 1무 1패를 기록한 빅토르 우고 파스(26세)와 맞대결에서 치열한 타격전 끝에 중반 이후 주도권을 잡고 두 차례 다운을 탈취하며 10회 KO승으로 WBA 주니어 라이트급 정상에 오른 것은 한국복싱의 역사를 새로이 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최용수는 홍수환으로 시작해 유제두, 홍수환, 김철호, 박찬영, 유명우, 이형철에 이어 8번째 적지에서 타이틀을 획득했다. 1906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길레트에 의해 한국에 복싱이 소개된 이후 60년 만에 김기수에 의해 첫 챔피언이 탄생한 이후 현재까지 43명의 세계 챔피언이 이뤄낸 50여 차례의 정상등극 중 최용수는 47번째 세계챔피언으로 등재된다.   

 

▲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와 김춘석 관장  

 

단지 아쉬운 점은 77년 11월, 위성 중계된 홍수환과 카라스키야의 세계타이틀전이 홍수환의 타이틀 획득 후 무려 27차례나 재방송되면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면, 최용수 경기는 11월 11일 복싱 하락세를 반영하듯 KBS 지상파 녹화방송으로 오후 5시에 전국에 방송되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1972년 충남 당진 출신으로 89년 서울로 상경한 최용수는 90년 신월동 극동서부 체육관에 입관, 복싱계의 명장 김춘석 관장의 조련을 받으며 5년만에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김춘석 관장은 김진길, 이영래, 권재우 트레이너와 함께 한국 프로 복싱계의 명품 지도자 ‘4대천왕’에 손꼽히는 지·덕·체를 겸비한 인물로, 세계챔피언 최용수를 비롯해 동양챔피언 정영길, 박봉춘, 김종길, 국내챔피언 김봉철, 최규운, 김우천, 이재희와 아마복서로는 올림픽 국가대표출신 박흥민(한국체대)과 박상현(박상현) 등 걸출한 복서들을 탄생시킨 관장이다. 

 

이 분의 조련을 받으며 90년 11월 신인왕전 3차전에서 오병철(광주체)에게 판정으로, 대뷔 8차전에서 장성관(원진체)에 2회 52초만에 KO로 허물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이듬해 92년 8월17일 10차전에서 김상문과 시합을 앞두고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전치3주의 부상을 당했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 7회 KO로 꺽으며 부활을 알렸고 무명의  최용수가 난적중의 난적인 국가대표 권채오의 친동생인 4연승(3KO승) 권창재를 8회 판정으로 누르며 비로소 숨은 잠재력이 폭발한다. 

 

권창재는 문성길과 스파링에서 한차례 녹다운을 탈취할 정도로 상당한 펀치력을 보여줬던 강타자로 후일 일본에 원정, 보이 루카스에 9회 KO승을 거둔 이후 상대선수가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정도로 메가톤급 파워를 보유한 복서였다, 93년 3월 안병세(대원체)를, 12월엔 이은식(부산광명)을 각각 누르고 국내와 동양을 평정한 후 미장이가 벽돌을 쌓아올리듯 세계챔피언에 순차적으로 등극한다. 

 

▲ 신인왕 임종대 최용수챔프 원동희 회장 채예석 총무(좌로부터)     ©조영섭 기자

 

최용수는 1차 방어전에서 15개월 전 한차례 맞대결해 승리한 적이 있는 미타니 야마토 와 원정 1차 방어전을 치른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 미타니는 프로전적은 8전 7승(6KO승) 1패에 불과 했지만 아마추어에서 91승을 올린 사우스포로 상당히 까다로운 복서였지만 판정으로 제압한다. 그는 2차 지명방어전을 유채꽃 향기 가득한 제주도에서 동급 1위 올랜드 소토(27승 19KO 2패)와 대결한다. 

 

정통파인 소트는 19KO승 전부를 4회 이내에 종결지을 정도로 찬스포착이 뛰어난 테크닉과 파워를 겸비한 복서였다. 최용수는 소트의 강타에 3회 2차례 다운을 당하며 침몰 일보직전 까지 몰렸지만, 8회 2분27초 극적인 역전 KO승을 거두며 기염을 토했다. 

 

최용수는 4차 방어전에선 95년 서울컵 국제대회 최우수복서 출신인 5전 5승(4KO승)을 기록한 몽골의 라크바 심과 근래에 보기드문 타격전을 펼쳐 판정승을 거두며 관록을 과시했다.  

 

그는, 한국선수에 6연속 KO승을 하면서 20연승(16KO승)을 달리는 하다께야마 다카노리(일본)와 백인철(32만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4만불(2억2천만원)을 대전료를 받고 원정 6차방어전을 치른다. 최용수는 우세한 체력으로 시종일관 상대를 압박, 무승부로 방어에 성공하면서 일본은 세계타이틀 15연패의 늪에 빠졌다.   

 

▲ 한국 복싱의 트로이카 장정구, 유명우, 최용수 (좌측부터) 

당시 언론에서는 1937년 6월 22일 헤비급 왕좌에 올라 11년 252일간 25차방어에 성공한 헤비급 챔피언 조루이스에 최용수를 비견하며 롱런 챔피언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갈기머리 염색을 하고 링에 오른 최용수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당진 출신답게 경기 전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면서 경기를 임한 복서로 기억된다. 

7차 방어전에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2차례나 타이틀전을 연기한 진통 끝에 훗날 WBA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힐베르토 세라노를 맞아 9회 KO승을 거둔 후  1998년 9월 5일 8차 방어전 상대로 6차 방어에서 한차례 맞붙어 무승부를 기록했던  하다께야마와 또다시 일전을 치른다.   

 

한국에서 스폰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기에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안전한 길을 버리고 또다시 25만 불의 파이트머니에 3번째 원정방어 길을 선택한다. 이 대결에서  하다께야마는 최용수의 공세에 마우스피스를 2차례나 뱉어내며 시간을 벌었는데도 주심은 모른척한 반면, 최용수는 단 한번의 로블로우로 1점을 감점당해 결국 처절한 사투에도 불구하고 0ㅡ2 판정패하며 챔피언 벨트를 넘겨줘야 했다. 다소 석연찮은 판정패임에도 불구하고 승자를 감싸주며 승리를 축하해주는 최용수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사실 그가 울며 겨자먹기로 25만 불의 파이트 머니를 받고 부나방처럼 적지로 몸을 던졌지만 결국 그의 타이틀을 빼앗아간 것은 하다께야마 가 아니라 IMF 한파(寒波) 였다  최용수가 타이틀을 상실한지 1년만인 99년10월 세계정상에 오른 최요삼과 함께 최용수 두 최씨가 IMF 의 최대의 피해자였다. 

 

최용수와 기자의 오래전 인연이 생각난다. 최용수가 세계챔피언에 등극한지 얼마 후 기자는 문화체육관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마침 곁에는 최용수의 스파링 파트너 였던 88체육관의 용산공고 소속의 최동식이 있었다. 기자는 최용수에게 웃으며 스파링 파트너비 좀 주라고 말하자 용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3만원을 꺼내준 장면이 인상 깊게 생각난다. 

 

▲ 럭셔리한 최용수 챔프 몸매 

또한 그가 격투기 선수로 전향할 때 그를 지인진과 함께 양평동에서 지도한 관장이 기자의 후배인 박현성 관장 이었다. 그때 그가 훈련하던 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한말이 새삼 떠오른다. “형님 인진이 저 친구 몸은 컨츄리(Country)스러운데, 용수 몸은 럭셔리(luxury) 하지 않습니까”라고 서문을 연후 “형님 용수는 길거리에 걸인들을 보면 주머니 속에있는 돈을 몽땅 털어 던져주는 인간적으로 가슴 따뜻한 순수함이 묻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최용수 그는 그렇게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정이 많은 복서였다.

 

장정구, 유명우 다음가는 빅 쓰리(Big Three)로 인정받으며 약 3년간 7차 방어에 성공하며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최용수는 글러브를 벗은 후 체육관운영, 건설회사 직원, 건설자재 납품, 요식업 등 다양한 일을 경험 했다. 

 

프로통산 35전 30승(20ko승) 1무 4패를 기록한 최용수가 극동서부 체육관 후배이자 아마추어 선수권자인 정성호 관장과 투톱을 형성, 돌고 돌아 다시 링으로 컴백했다. 정관장은 체육관 운영을 20년 이상 경험한 능력 있는 베테랑 관장으로 최용수 총관장과 하모니를 이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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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인환 2020/04/09 [17:01]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 가장보통일때 2020/04/07 [14:47] 수정 | 삭제
  • 견고한 난공불락의 요새에도 불구, 7전8기로 도전한 최용수 선수님의 도전정신이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지금과 같은 힘든 시기에, 크게 와닿는 기사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 꽃사슴 2020/04/07 [14:04]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송민섭 2020/04/06 [19:25] 수정 | 삭제
  • 항상 복싱역사에 대해 깊이있게 올려주셔서 많은공부가됩니다
    감사합니다 ^^최용수 선배님의 빈틈없는 수비와 화끈한 파워풀한공격이
    일품이였던 선수로 기억됩니다
  • 베냐민 2020/04/06 [16:58] 수정 | 삭제
  • 최용수 선수!! 정말 멋지고 인상적이었던 선수인데 조영섭 관장님 덕분에 과거로 날아간 듯한 기분이드네요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끈아 2020/04/06 [15:53]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 글 감사하고 뜨거워지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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