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CCTV 논란-②] “철도 사고, 기관사만 X져라”

운전실 감시카메라, 누구를 감시하나

성상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4/08 [08:24]

[열차 CCTV 논란-②] “철도 사고, 기관사만 X져라”

운전실 감시카메라, 누구를 감시하나

성상영 기자 | 입력 : 2020/04/08 [08:24]

국토교통부가 철도차량의 운전실에 감시카메라(영상기록장치)의 세부 설치 규정을 담은 철도안전법령을 지난 2월 입법예고하자 기관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운전실 내 범죄를 예방하는 등 안전을 위해서라는 설명이지만, 기관사들은 누굴 감시하겠다는 거냐는 반응이다. 문화저널21은 철도 기관사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 디젤전기기관차에 연결된 무궁화호 객차.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앞선 첫 번째 인터뷰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기관사 한 명만 조지면 된다.” 정제되진 않았지만, 이 말은 열차 운전실 영상기록장치 설치를 둘러싼 논란의 쟁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두 번째로 만난 조동영 기관사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중앙선 아신역 궤도 이탈의 진상


 

한국철도공사 청량리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으로 만 9년째 중앙선 화물·여객열차를 운전하는 조 기관사는 사건이 터지면 기관사 잘못으로 몰아간 적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그 밑에는 철도 전반에 구축된 기계·전자 시스템을 향한 맹신이 깔려있다. 조 기관사는 철도 현장의 관리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시스템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운전실 감시카메라가 곧 작동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10여 년 전 동료가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조 기관사의 동료는 청량리에서 출발해 제천역 방향으로 향하는 열차를 운행 중이었다. 중앙선 아신역에 정차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운전실에는 조 기관사의 동료와 부기관사, 그리고 객실에는 여객전무가 탑승해 있었다. 녹색의 출발 신호를 본 여객전무가 출발해도 좋다고 무전을 했고, 부기관사와 기관사는 각각 신호기를 확인한 후 열차를 출발시켰다. 역 구내 부본선에서 본선으로 진입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열차가 궤도를 벗어났다. 조 기관사는 전철기(선로전환기)를 찢어먹었다고 표현했다.

 

조 기관사에 따르면 사고 이후 기관사·부기관사·여객전무 세 사람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됐다. 처음에는 세 명 모두 파란불이 현시된 것을 보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신호기는 부본선 진행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선로전환기는 본선 진행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여객전무가 말을 바꿨다고 했다. 한국철도 측은 사고 당시 장면을 담은 영상을 들고 와 기관사와 부기관사를 압박했다. 조 기관사는 결국은 두 사람만 징계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영상은 조작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열차 운전실 감시카메라가 작동을 시작한다면 사고 때 기관사의 잘못을 꼬투리 잡으려는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방 주행 영상 녹화는 무조건 찬성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 책임을 기관사에게 떠넘기기 전에 사람이 선로로 뛰어들지는 않는지, 신호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철도공사 청량리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 조동영 기관사.  © 성상영 기자

 


몇 시간 동안 100% 집중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사고의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때도 기관사의 잘못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달리는 열차 앞에 다른 열차가 있는데 시스템 오작동으로 신호기는 진행(녹색)을 현시했다고 치자. 신호기를 지나서 앞서는 열차를 기관사가 눈으로 발견했다. 그리고 신호기가 잘못 현시됐다고 판단해 비상제동을 걸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제동거리가 긴 철도차량의 특성상 선행 열차의 후미를 접촉해 차량이 일부 파손됐다. 하필 사고 1분 전에 후행 열차의 기관사가 물을 마셨다면 누구의 잘못이 클까.

 

철도 기관사들이 운전실 영상기록장치를 감시카메라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조 기관사는 기관사도 사람이어서 운전에만 100% 집중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잡고 가진 않는다라며 중간에 물도 마실 수 있고 오디오나 공조 장치를 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기관사는 영상기록장치는 기관사를 감시하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 기관사는 감시카메라를 단다고 해서 절대 안전이 향상되지 않는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CCTV 설치 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병원 수술실의 사례에 빗대기도 했다. 조 기관사는 영상기록장치가 아니면 의사의 집도 장면을 확인할 길이 없지만, 철도는 기관사의 잘못을 따지려면 감시카메라가 아니어도 운행기록장치를 확인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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