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몽골 세계챔피언 '라크바 심' 키워낸 이대환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4/13 [11:10]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몽골 세계챔피언 '라크바 심' 키워낸 이대환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4/13 [11:10]

강동구에서 체육관을 운영한지 만20년, 단 한번도 휴관을 한 적이 없지만 최근 불어닥친 미증유의 코로나19  포비아(phobia)를 피해 열흘간 잠정 휴관을 하고 원정 취재를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연히 예산 출렁다리에서 개최된 프로복싱 경기장을 찾아 현지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동양웰터급 챔피언 박봉관 관장과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제자 중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어렵게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의 사연이 TV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자 이를 시청한 WBA 김병무 심판이 수년간 소리 소문 없이 지속적으로 그 선수에게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바 있다. 그때 ‘남을 위해 산 인생만이 가치 있는 삶’이란 누군가의 말처럼 복싱인 김병무 선배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 이대환 관장과 WBA 김병무 심판(우측)     ©조영섭 기자

 

그래서 복싱 스토리의 포커스를 평소 염두에 둔 김병무 심판에 맞추고 그의 거주지인 경기도 원당에 도착하니 이대환, 조은상 관장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두 관장도 타 체육관 관장들처럼 체육관을 휴관한 상태임을 인지한 김병무 심판이 그들에게 위로의 만찬을 베풀기 위해  초청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기자의 스케줄과 겹쳤던 것이다. 

 

김병무 심판은 자신보다 이대환(62세) 관장이 지난 역경을 잘 극복하고 새롭게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더욱더 임팩트 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다며 아름다운 양보(?)를 선택했다. 결국 경기도 기흥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있는 몽골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라크바 두크바타르(링명 라크바 심)를 탄생시킨 이대환 관장이 이번주 복싱 스토리 주인공으로 낙점 되었다.  

 

이대환, 그는 5년 전 모든 영욕이 점철된 일선지도자 생활을 접고 경기도 기흥에서 폐관한 체육관을 오픈해 운영하고 있을 때, ‘보증금을 지원 할테니 체육관을 인수하라’고 권유한 이가 김병무 심판이다. 이런 그를 대한프로모션 김동민 대표는 ‘참된 의인 중의 의인’ 이라 불렀다. 하지만 속이 깊은 이대환은 후배 김병무 심판의 호의를 접고 기흥체육관에서 2년간 숙식을 하며 차곡차곡 돈을 적립해 결국 3년 전 체육관을 직접 인수해 오픈했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대목이다.

 

▲ 국내외에서 국제심판으로 활동하는 WBA 김병무 심판위원  

 

1958년 전남 영광출신의 이대환은 치과의사인 이영래 옹의  6남매 중 막내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큰형은 서울대에 입학한 인텔리였지만 이대환은 뜻한바가 있어 71년 14살 때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작은형이 있는 서울로 상경한다. 그곳에서 터전을 잡은 이대환은 천호동 장현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 78년 1월 프로에 데뷔했지만 내리 3연패를 당한다.

 

하지만 그를 눈여겨 본 권재우 관장에 의해 극동으로 이적, 그해 12월 MBC 신인왕(페더급)전에 출전해 3연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 양일(대원체)과 맞대결에서 6회 판정패 한다. 양일은 78년 한 해 동안 서울신인, 전국신인에 이어 MBC신인왕전 까지 접수하며 3관왕에 올랐는데,  3개 대회에서 모두 MVP에 선정된 만17세의 복싱 신동이었다. 

 

이대환은 79년 8월 12전 9승(1KO승) 1무 2패의 국내 페더급 챔피언 윤석태(와룡체)의 타이틀에 도전, 치열한 타격전을 벌여 예상을 뒤엎고 무승부를 기록한 후, 윤석태가 동양타이틀 도전으로 국내 타이틀을 반납하자 79년 12월, 양일과 한국 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을 치른다. 당시 양일은 176Cm의 장신에 12전11승(2KO승) 1무 무패의 기록과 함께 세계랭커 태국의 타놈지트. 수코타이를 판정으로 누르며 상승세에 있었다.  

 

반면 같은 12전에 5승 3무 4패의 평범한 전적을 기록한 이대환은 단 한차례의 KO승도 없는 약한 화력을 특유의 멘탈과 뚝심으로 커버하며 전세를 뒤집으며 이변을 창출한 것이다. 

 

80년 3월 30일 이대환은 한국 복싱사에 최대 이변으로 기록될 명승부를 펼친다. WBA 페더급 1위에 동양 페더급 챔피언 출신의 51전 42승(15KO승) 2무 7패를 기록한 황복수(필승체)를 맞이한 이대환이 현격한 전력차(15전 6승 4무 5패)를 극복하고 10회 판정승하며 기염을 토했다. 축구로 말하면 변방의 베트남이 무적함대 브라질을 꺽은 것과 비견할 정도의 최대의 이변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거기까지였다. 80년 8월과 81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원정, 43전 35승(27KO승) 8패를 기록한 로얄 고바야시가 보유한 동양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 1차전은 주도권을 잡고 2차례 다운을 탈취했음에도 지독한 텃세에 밀려 판정패했고, 이어진 2차전도 역시 홈 텃세에 판정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81년 8월 29일 키드 하산과 인도네시아 원정전을 끝으로 만23세에 복싱을 접는다. 3년 8개월간 19전 8승 3무 8패를 기록한 그는 단 한차례의 KO승도 단 한차례의 KO패도 없었다.   

 

▲ 이대환 관장(중앙)과 하다께야마를 꺽고 정상에 오른 라크바 심(우측) 

 

이대환은 은퇴 후 83년부터 성수동에 대아산업 배영대회장의 후원으로 현명체육관을 인수, 대아 체육관이란 간판을 걸고 본격적으로 선수양성에 돌입해 여자 세계챔피언 신윤주를 비롯, 유금수, 조삼훈, 황현재, 김창용, 이영용, 이현식, 최천식 등 여러 체급에서 국내챔피언을 베출 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급기야  97년 2월 최용수가 보유한 WBA jr라이트급 타이틀 매치에서 도전에 실패한 몽골용병 라크바 심이 복싱을 접고 몽골에서 운둔생활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의 후견인이자 대아산업 배영대 회장과 함께 몽골로 날아가 현지에서 라크바를 설득 후 그가 몽골 최초의 세계챔피언이자 두 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이대환은 영어와 일어, 타칼로그어를 배우면서 국제적인 트레이너로 발돋움한다.   

 

라크바 심은 1972년생으로 95년 서울컵 대회에서 라이트급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 주목을 받자 범아시아복싱협회(PABA) 회장이자 WBA 수석부회장인 심양섭에 의해 발탁, 수입복서 형식으로 그해 12월 국내 프로 무대에 뛰어든 용병이었다. 심 회장은 세계복싱계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라크바를 적극 후원, 실직적으로 라크바의 후견인 이었다 

 

▲ 경기후 챔피언 백종권과 심영자회장의 승리 세라모니 

 

이대환의 지도를 받은 라크바는 결국 최용수에 홈타운 디시젼으로 힘겹게 타이틀을 획득한 하다께야마를 98년 9월 5일 적지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난타해 초토화 시키면서 5회 KO로 꺽고 WBA Jr라이트급 세계정상에 올라 몽골 최초의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몽골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전용기를 현장에 보내 그는 영웅대접을 받으며 금의환향했다. 9월 5일 그날 하루는 몽골 임시 국경일로 선포될 정도로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라크바는 99년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백종권과의 1차 방어전을 치른 그때 그날 바로 그 경기에서, 13전 11승(9KO승) 1무 1패 라크바는 중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20전 전승(18KO승)을 기록한 도전자 백종권에 10회 한차례 다운을 뺏고 12회엔 다운직전까지 몰고가는 등 우세한 경기를 펼쳤건만 1ㅡ2로 판정이 뒤집어지며 타이틀을 상실한다. 그의 후견인이자 WBA 심양섭 수석부회장이 직접 감독관으로 참관한 경기라 충격은 더욱더 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승자도 패자도 모두 상처받은 최악의 참사였다. 

 

백종권에 타이틀을 상실한 라크바는 일본에서 매니져먼트를 새로 계약하고 활동하면서 2002년 4월 13일, 태국에서 요드사난 난타차이(태국, 37승 1무 2패)와 공석중인 WBA 슈퍼 페더급 타이틀전을 가졌으나 판정패했다. 그러나 기수를 돌려 미국무대에서 2004년 4월 10일 미구엘.칼리스트(베네주엘라)를 5회 KO로 꺽고 WBA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라서며 2체급을 석권한다. 그러나 1차 방어전에서 24전 전승의 후안 디아즈에게 판정패하며, 두 차례 정상에 올랐지만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성공하지 못한 채 그는 2005년 9월, 26전 21승(18KO승) 1무 4패의 전적을 끝으로 링을 떠난다.  

 

▲ 백종권과 라크바 심(우측)  

 

몽골 최초의 세계챔피언이자 2체급 석권자였던 풍운아 라크바는 여러 차례 매니져가 교체 되었지만 은퇴 할 때까지 트레이너 이대환 만큼은 복싱을 접을 때 까지 8년 7개월간 요지부동 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성심껏 지도한 이대환의 지도능력과 인품에 진정한 스승으로서 신뢰 했다는  반증이다. 

 

올해는 한국과 몽골이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사실 양국민은 외모로 봤을 때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다. 길게 보면 원나라와 고려가 1219년 몽골군의 침략이라는 불행한 역사로 시작되어 굴욕적인(?) 형제맹약을 맺었으니 두 나라의 관계가 800년을 넘은 셈이다. 이시기에 원나라 몽고풍이 들어오면서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는 결혼풍습도 생겨났고 소주도 이 무렵에 전래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사위나라)이 되어 중국의 원제국을 수립한 칭기즈칸의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은 자신의 딸을 고려 25대 충렬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를 비롯해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원나라의 공주 7명은 한국에서 일생을 보냈다. 

 

아마도 한국인과 몽골인이 결합한 다문화 가정의 뿌리가 이때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몽골 레슬링 대표 출신인 현 몽골 대통령인 칼트마 바툴가는 과거 선수촌에서 라크바와 선후배로 오랫동안 유대관계를 맺은 인연으로 라트바는 대통령과 독대도 가능한 인물이다.  그는 스승인 이대환 관장이 몽골에 도착하면 30명의 보디가드와 함께 4억짜리 일제 승합차로 영접을 나온다. 칭키즈칸 이래 세계를 정복한 첫 번째 인물 라크바와 그의 스승 이대환, 그리고 귀한 자리를 마련해준 김병무 심판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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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 2021/06/22 [14:59] 수정 | 삭제
  • 그당시 백종권이 백퍼진경기였습니다, 사실 부끄럽더라구요. 한국사람으로서
  • 한대균 2021/05/20 [23:04] 수정 | 삭제
  • 김동욱님 관장님이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오이도 찜질하는곳에 손님으로 오세요^^ 관장님이 이댓글 보시고 잘지내신다고 기흥이대환복싱짐에 계시니까 체육관으로 연락주시라고 하네요^^ 기억나시니까 연락달라세요ㅎ
  • 김동욱 2020/05/06 [19:42] 수정 | 삭제
  • 이대환 관장님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ㅎㅎ 25년전 뚝섬체육관에서 운동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대환관장님,인품하나는 정말 좋으신분이었지요....복싱도 세심하게 인격적으로 가르치셨고요.. 관장님! 복싱배우다가 결혼한 건대학생 기억하시는지요...청첩장주던 그 학생...ㅎㅎ 항상 건강하세요...
  • 테살 2020/04/19 [14:4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창스 2020/04/13 [19:30] 수정 | 삭제
  • 복싱역사를 적나라게 쓰시는 복싱관장님 대단하십니다!
  • 끈아 2020/04/13 [16:16] 수정 | 삭제
  •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 꿀오소리 2020/04/13 [13:37] 수정 | 삭제
  •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얘기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베냐민 2020/04/13 [12:02] 수정 | 삭제
  • 언제나 아름다운 복싱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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